한국에서 동성애자 모임이 최초로 드러난 것은 1993년으로 알려져 있다. 그 후 국내에 동성애자를 비롯한 젠더·퀴어의 존재가 다양한 형태로 드러났다. 학계, 법조계, 운동가 그룹 등에서 동성애를 비롯한 성적지향, 젠더정체성, 간성 등을 포함하는 젠더·퀴어에 관한 논의가 이뤄졌다. 젠더·퀴어를 둘러싼 주요 법적 쟁점으로 동성 간 성행위의 비범죄화, 차별금지법 제정, 동성결합의 제도화 등이 대두됐다.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젠더·퀴어의 권리주장과 관련해 그 법적 근거로 이른바 ‘욕야카르타 지침’(Yogyakarta Principles)이 원용된다. ‘욕야카르타 지침’은 2006년 11월 6일부터 9일까지 인도네시아 욕야카르타에서 국제 비정부기구와 국제인권법 관련 연구자들이 모여 성적지향과 젠더정체성 관련 이슈를 정리한 국제인권법 적용지침을 말한다.
이 지침은 세계인권선언문을 비롯해 유엔의 각종 규약에 나타난 국가 의무들을 젠더·퀴어의 권리보장에 초점을 맞춰 재정리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각종 선언문과 규약에 규정된 ‘모든 사람’ ‘인권’ 등의 개념을 젠더·퀴어의 인권 중심으로 달리 해석해 재구성한 것이다. 그 결과, 젠더·퀴어와 관련된 국제인권법 적용 기준이 모두 29개의 지침으로 나열됐다.
2006년 욕야카르타 지침의 기초를 닦은 이들은 이 지침이 당시 국제인권법에서 도출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즉, 해당 지침 속에 제시된 ‘국가의 의무’는 새로운 것이 아니라 기존 국제법에서 논리적으로 유추할 수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래서 욕야카르타 지침이 ‘젠더 이데올로기’에 기초한 일방적 주장임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국제인권법의 ‘원칙’으로 인식된다.
2017년에는 개정·보완판에 해당하는 ‘욕야카르타 지침 플러스 10’이 제정됐다. 여기에는 2006년에 제시된 성적지향과 젠더정체성 외에 ‘젠더 표현’과 ‘성징’(성별 특징)을 보호 대상으로 추가했으며, 기존 29개 외에 9개 지침을 추가했다.
‘욕야카르타 지침 플러스 10’은 2006년 ‘욕야카르타 지침’보다 더 직접적이고 강력하게 젠더·퀴어의 특권을 주장한다. 후자가 일반인의 인권을 염두에 두고 적용할 것을 주장했다면, 전자는 아예 젠더·퀴어에 맞춰 그들의 권익 보장을 더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즉, 차별금지 수준을 넘어 국가적 차원의 보호와 지원을 청구하는 수준으로 나아간 것이다. 이는 지난 10년간 젠더·퀴어의 목소리가 국제적으로 더 커진 것에 따른 자신감의 표현으로 보인다.
욕야카르타 지침은 자유권 이상으로 경제·사회·문화·정치적 권리를 매우 광범위하게 규정한다. 이른바 인권 개념의 ‘불가분성’을 반영한 것이다. 그래서 동성애자, 트랜스젠더 등 젠더·퀴어의 권리를 전체적으로 두루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오늘날 욕야카르타 지침은 젠더·퀴어와 그 옹호자들에 의해 ‘성 혁명’을 위한 기본 전략과 지침서로 활용된다. 욕야카르타 지침은 제정 직후 한국의 차별금지법 제정 시도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욕야카르타 지침이 발표된 후, 유엔인권이사회는 관련 내용을 참고해 차별금지법 제정에 관한 권고안을 회원국들에 보냈다. 당시 노무현정부는 자신의 공약대로 차별금지법 제정 관련 논의를 진행했고 법무부는 2007년 12월 포괄적 차별금지법안을 만들어 발의했다.
그 후로 지금까지 젠더·퀴어를 위한 차별금지법안이 수차례 발의됐다. 그뿐만 아니라 욕야카르타 지침은 국가인권위원회 결정의 근거로 원용되곤 했다. 인권위가 차별시정 권고 결정을 내리면서 그 결정문 별지에 관련 규정으로 욕야카르타 지침을 제시한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2019년 3월 ‘성전환 수용자에 대한 차별 및 인권침해에 관한 진정사건(17진정0726700)’을 들 수 있다. 여기선 욕야카르타 지침을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에 관해 공신력 있는 국제인권기준으로 인정되는 지침’으로 소개하고 있다.
또 “유엔 인권최고대표보고서뿐 아니라 국내 인권위의 결정문에도 인용되고 있으며 몇몇 국가의 법원 판결문에도 등장한다”고 주장하며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에 관한 인권 보장의 국제적 기준으로 인정되면서 그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고 단정한다.
오늘날 욕야카르타 지침이 국제적으로 영향력을 미치는 현실에 대한 객관적 분석이 필요하다. 그 주장에 나름대로 근거가 있다면, 상응한 대응책을 세워야 한다. 하지만 그 주장에 오류가 있거나 부당한 점이 있다면, 이를 분명히 지적하며 그 문제점을 밝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