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그래도 내년을 예측해보면

입력 2020-12-03 04:04

트렌드 전문가들에게 2020년 전망은 완벽한 실패라는 측면에서 ‘역대급’으로 남을 듯하다. 물론 이들의 지난해 말 예측을 손가락질하는 사람은 없다. 코로나19 확산에 대한 세계보건기구(WHO)의 첫 경고가 나온 게 1월 9일이었으니.

구체적으로 전망은 얼마나 빗나갔을까. 경제 쪽만 보자. 많은 이들이 ‘공유 경제’의 본격 도래를 얘기했다. 자동차부터 가구, 집까지 소유하지 않고 향유하는 ‘스트리밍 라이프(Streaming Life)’가 새로운 트렌드로 부상할 것이라는 예측이었다. 하지만 팬데믹을 겪으며 강해진 위생과 안전의식은 오히려 공유 거부 분위기를 불러왔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집에 대한 소유 개념이 점점 옅어질 것이라는 관측도 ‘영끌’ 행렬에 무색해졌다. 유사 이래 가장 강력했던 아파트 장만 열풍은 여전히 식지 않고 있다.

2021년은 어떨까. 예단은 금물이지만 내년 전망은 올해처럼 부질없진 않을 듯하다. 대유행병이 만든 변화의 큰 흐름이 내년에도 이어지고, 그 속도는 더 빨라질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백신과 치료제가 보급되더라도 트렌드를 넘어 뉴노멀이 된 비대면 흐름을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이다. 내년에도 ‘생존’을 위해 급격한 변화에 적응해야 하는 고단한 삶이 이어진다는 얘기다. 그나마 예측 자체가 불가능해 생기는 막막함이나 두려움의 단계를 넘어선 점은 위안이다.

그렇다면 내년에 새로 뜰 트렌드나 사업 아이템은 뭘까. 최대 관심사이긴 하지만 사실 여기서부터는 여전히 전문가 영역이다. 관련해 여러 의견을 접했지만 가장 큰 통찰을 준 것은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의 최신 사업 트렌드 소개 책자였다. 84개국 127개 도시의 코트라 해외 무역관 직원들이 발굴한 최신 비즈니스 중 37개를 엄선해 엮은 ‘2021 한국이 열광할 세계 트렌드’에 실린 사례들엔 사업 아이디어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힌트도 담겨 있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속도의 변화’가 비즈니스 생태계를 바꿔놓고 있다고 해석한 대목이다. 새 기술을 받아들이는 데 길게는 수십년의 시간이 걸렸지만 위기 상황을 극복해야 하는 당위성 아래 사람들의 태도가 빠르게 변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코로나19 확산 이후 인공지능(AI) 전기차 블록체인 등 혁신 기술에 대한 대중의 수용도는 급격히 빨라지고 있다. 당연히 관련 분야의 성장과 이에 따른 비즈니스 기회는 상당할 것이라는 전망도 가능하다.

‘변화 속도에 대한 반작용’이 부른 사업도 눈길을 끈다. 빨라진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 옛것에 대한 그리움과 환경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는 데 착안한 아이템이다. 이 역시 ‘속도의 변화’라는 키워드와 일맥상통한다. 미래에는 컴퓨터 모니터를 통해 학습하고 회의할 것이라는 전망이 몇 달 새 급속히 현실화한 것처럼 자연의 역습으로 인류가 멸종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피부로 느낀 후 막연했던 환경보호 의식이 급속히 높아진 점을 전제한 사업들이다. 에콰도르의 한 스타트업이 식물로 생분해성 접시를 만든 ‘리프팩스 사업’이 대표적이다. 코로나 시대 위생 문제로 일회용품 사용 제한이 풀려 플라스틱 쓰레기 대란이 일어난 현 상황에 대한 반작용인 셈이다. 과학과 의학의 눈부신 성취에도 불구하고 변종 전염병에 속수무책이 되는 것을 보고서야 사람들이 자연순환사회의 중요성을 제대로 깨닫고 있는 셈이다.

대기업들이 연말 정기 인사를 앞당기고 있다. 달라진 상황에 맞춰 몸집을 줄이고, 조금이라도 먼저 사업계획을 짜기 위해서다. 기업의 새해 사업계획에는 기술변화 속도 대응 못지 않게 ‘자연순환사회 지향’이라는 새로운 트렌드에 어떻게 대처할지에 대한 고민도 담아야 할 것이다.

한장희 산업부장 jh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