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하면서 닮나… 文정부 금융권 수장도 ‘모피아’

입력 2020-12-02 04:02

‘모피아’(마피아+재무관료)들이 최근 주요 민간 금융기관·단체장 자리를 싹쓸이하듯 나눠먹고 있다. ‘친박’(친박근혜)에서 ‘친문’(친문재인)으로 변신한 정치인 출신도 낙하산으로 한 자리를 차지했다. 과거 이런 관행을 강력 비판했던 문재인 대통령은 말이 없다.

한국거래소 이사후보추천위원회는 지난 30일 손병두 전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을 차기 이사장 단독 후보로 결정했다. 손 전 부위원장은 그동안 유력 후보로 거론되며 ‘모피아 낙하산’ 논란의 중심에 있던 인물이다.

손 전 부위원장의 거래소 이사장 내정으로 한 달여간 진행된 주요 4개 금융기관·단체장 인선은 모두 마무리됐다. 결과는 관직에서 직행하는 관료 1명, 민간에서 경력을 ‘세탁’한 관료 2명, 정치인 1명으로 정리된다. 금융정보분석원장 출신인 김광수 전 NH농협금융지주 회장은 1일 은행연합회장 임기를 시작했다.

4명 중 가장 먼저 손해보험협회장에 내정된 정지원 전 거래소 이사장은 오는 21일 공식 취임한다. 재무부와 금융위원회 등을 거친 그는 11월 2일 단독 후보로 추대됐다. 김광수 회장은 농협금융지주 회장 임기를 5개월여 남겨둔 지난 23일 은행연합회장으로 내정됐다. 사흘 뒤에는 정희수 보험연수원장이 차기 생명보험협회장 후보로 단독 추대됐다.

정 원장은 한나라당·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에서 17~19대 국회의원을 지낸 3선 의원 출신이다. 대표적 친박 의원이었지만 박 대통령 탄핵 후 민주당으로 옮겨 문재인 대선 후보 캠프에서 일했다. 그가 2018년 11월 보험연수원장에 선임됐을 때도 보은성 인사라는 비판이 거셌다.

전직 관료와 정치인이 주요 금융기관·단체장을 싹쓸이하기는 현 정부 들어 처음이다. 김태영 전임 은행연합회장과 곧 자리를 내줄 신용길 생보협회장은 평생 금융업계에서 일한 금융인이다. 특히 생보협회장은 지난 6년간 민간 출신이 맡아왔다.

인선 과정이 요란했지만 금융 당국이나 청와대에서는 단 한 마디 경고 메시지가 나오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시절이던 2014년 10월 방위사업청 국정감사에서 “각 군 전력부서에 근무했던 제대 군인이 방산업체에 취업하는 경우가 많은데 심지어 퇴직 다음날 취업하는 사례도 있었다”며 “방산 비리는 결국 군피아 문제가 가장 중요한 근본 원인이자 적폐”라고 비판했다. 퇴임 후 28일 만에 거래소 이사장으로 내정된 손 전 부위원장은 ‘전역 다음날 방산업체에 취업한 군인’이나 다름없는 경우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