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장 논란’을 촉발한 간장 표기 규제가 부실한 심사 과정을 거쳐 도입됐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제품 전면에 ‘혼합 간장’ 표기를 의무화하기 위해 실시한 ‘규제영향분석’이 도마에 올랐다. 간장 제조업계에 미치는 영향을 제대로 분석하지 않았고 해외 사례 분석을 빼먹은 점 등이 문제로 꼽힌다. 업계는 식약처의 성급한 규제로 과거 MSG(글루탐산나트륨) 유해 논란이 재연될 수 있다며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
논란의 중심에 선 혼합 간장이란 화학적 방식인 ‘산분해 방식’으로 만든 간장과 전통 간장을 섞은 제품을 말한다. 가장 흔히 팔리는 제품이기도 하다. 그런데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에서 유해성 논란이 제기되면서 제도 개선 절차가 진행됐다. 혼합 간장에서 발암 의심 물질인 ‘3-MCPD’가 나왔다는 것이다. 식약처는 해당 성분 자체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없다는 입장이다. 판매 금지를 할 계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다만 소비자 알 권리를 위해 제품 전면에 혼합 간장 여부 및 산분해 간장 혼합 비율을 표기하도록 제도를 개선하기로 했다.
식약처는 신규 규제를 도입하기 위해 규제 심사라는 과정을 거쳤다. 문제는 이 과정이 적절했느냐다. 국민일보가 1일 입수한 식약처의 ‘식품 등의 표시기준 규제영향분석서’(이하 분석서)에 따르면 규제 도입이 간장 업계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 상표만 있는 라벨을 혼합 간장 여부를 표기한 라벨로 바꾸는 비용만 들이면 된다고 봤다. 새로운 라벨을 찍어내기 위한 비용 7911만원이 업계에서 들여야 하는 추가 비용이라고 분석했다. 업계의 입장은 다르다. 업계 관계자는 “부정적 단어를 앞에 쓰면 (혼합 간장이 암을 유발할 수 있다는) 오해를 불러일으켜 매출에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 과거 MSG 논란처럼 번질 수 있는데 그 부분을 고려하지 않았다”고 우려했다.
소비자 알 권리를 위해 도입한다면서 소비자에게 돌아가는 이익이 없다고 분석한 점도 문제로 꼽힌다. 분석서에 따르면 소비자 등이 얻게 될 편익은 ‘0원’이다. 효과가 얼마나 되는지를 계산하지 못했다.
해외 선례와 새로운 규제를 비교·분석하지 않은 점도 부실 검증 의혹을 부른다. 분석서는 해외에 비교할 만한 사례가 없다고 못 박았다. 사실은 다르다. 지난해 1월 대만에서 한국 사례처럼 혼합 간장을 전면에 표기하는 제도를 시행했다. 그 결과 혼합 간장 업계가 고사하고 일본이 인수한 양조 간장 업체를 중심으로 시장이 재편됐다. 업계 관계자는 “대만은 규제 시행 이후 한국·베트남산 혼합 간장을 수입하고 있다”고 전했다.
특정 단체 얘기만 반영한 점도 문제다. 소비자단체 중에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소비자시민주권모임 의견이 반영됐다. 지난달 소비자녹색연대 등 다른 단체들이 반대 성명을 낸 것과 상충한다. 업계 관계자는 “식약처가 합리적으로 제도를 개선해주길 바란다”고 목소리를 냈다. 식약처 관계자는 “합리적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