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코너] 트럼프를 무너뜨린 ‘원팀’ 정신

입력 2020-12-02 04:07

올해 미국 대선에서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는 보이지 않았다. 코로나19 때문이었다. 로이터통신이 “바이든은 ‘외출자제 전략(stay-at-home strategy)’을 구사한다”고 평했을 정도다. 특히 대선이 2주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서도 바이든은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워싱턴포스트는 “역대 미국 대선 레이스에서 이런 ‘로키 행보’는 매우 이례적”이라고 지적했다.

대신 민주당이 나서서 싸웠다. 러닝메이트였던 카멀라 해리스는 미국 전역을 돌아다녔고,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격전지를 중심으로 집중 유세를 펼쳤다. 민주당이 투표율 높이기에 온 힘을 쏟은 것도 주효했다. ‘반(反)트럼프’ 바람을 믿은 것이다. 올해 대선 투표율은 66.8%로 추산된다. 1900년 대선 투표율 73.2% 이후 120년 만에 최고 기록이다. 이번 대선은 ‘바이든 대(對) 트럼프’의 싸움보다는 ‘민주당 대 트럼프’의 전쟁 성격이 더 강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9이닝을 완투하는 투수이면서 동시에 4번 타자인 ‘이도류’ 선수처럼 보였다. 조직적으로 맞선 민주당은 스퀴즈 번트로 결승점을 올리는 ‘쥐어짜기’ 승리를 거둔 것 같은 느낌이다.

바이든은 민주당 후보 경선에 나서기 이전부터 대세론 후보였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실전 싸움엔 약한 무술 유단자의 모습이었다. 경선 1차전이었던 아이오와주에선 4위로 추락하더니 2차전인 뉴햄프셔주에선 5위로 무너졌다. “바이든은 끝났다”는 조롱이 나왔다. 그러나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경선 1, 2차전에서 1위를 차지한 것이 민주당 주류의 근심을 샀다. 스스로를 ‘민주적 사회주의자(democratic socialist)’라고 부르는 샌더스는 진보 세력의 전폭적 지지를 받았으나 ‘급진 좌파’라는 색깔론 공세에 시달렸다. 그래서 트럼프가 가장 원하는 민주당 후보라는 말이 나돌았다. 실제로 트럼프는 샌더스의 선전에 “축하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승리를 뺏기지 마라”는 트위터 글을 올리기도 했다.

14개주에서 민주당 경선이 동시 실시됐던 지난 3월 3일 ‘슈퍼 화요일’은 이번 대선의 거대한 전환점이었다. 그 이틀 전에 초반 돌풍을 일으켰던 피트 부티지지 전 사우스벤드시장이 바이든 지지를 선언하며 사퇴를 전격 발표했다. 하루 전엔 선두권을 위협했던 에이미 클로버샤 상원의원이 그 뒤를 따랐다. 중도 성향의 표가 분산되는 걸 막기 위한 의도였다. 바이든은 슈퍼 화요일에 10개주에서 승리했다. 뉴욕타임스는 “바이든이 돌아왔다”고 전했다.

부티지지와 클로버샤는 민주당 경선에서 ‘자기 장사’를 계속할 수 있었다. 특히 37세의 젊은 부티지지는 고향이자 텃밭인 인디애나주에서 연방 상원의원 출마를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그가 스포트라이트를 마다하고 무대에서 내려왔다. 3선 여성 상원의원인 클로버샤도 차기를 노리면서 완주할 수 있었다. 샌더스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자신을 고립시키는 ‘반(反)샌더스’ 연대에 대한 분노를 감췄다. 이후 경선 패배를 수용했고, 대선 승리에 힘을 모을 것을 다짐했다. 샌더스는 일부 진보세력이 중도 성향의 바이든에 등을 돌리지 못하도록 만드는 버팀목 역할을 했다.

안정감과 정치적 경륜 등 바이든의 자산도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이번 대선 승리는 개인의 이해득실을 고려하지 않는 희생과 사심보다는 대의에 충실했던 모습이 함께 일궈낸 결과다. 샌더스·오바마·부티지지·클로버샤 등은 트럼프를 꺾기 위해 ‘원팀’이 됐다. ‘100년 집권’을 얘기했던 여당이나 ‘반문(反文)’에만 의지하는 야당 모두에 이번 미국 대선이 주는 교훈이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