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하면 떠오르는 별칭 삼다도. 섬에 여자·돌·바람이 많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리고 다음으로 떠오르는 별칭 삼무(三無). 이것은 도둑·거지·대문이 섬에 없다는 의미이다. 내가 살던 집에도 대문이 없었다. 찾아오는 건 오직 새와 바람뿐이던 어느 날이었다.
일을 마치고 돌아와서 씻으려는데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수도꼭지를 잠그고 귀를 기울였다. 누군가 마당으로 들어와서 문을 세차게 두들기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문을 열어 달라고 외치는 남성의 목소리도 들렸다. 발음이 어눌한 것으로 보아 술에 취한 것 같았다. 부엌으로 가서 무기를 찾았다. 하지만 무기로 사람을 때릴 용기가 없어서 집 안의 모든 불을 끄고 조용히 몸을 웅크렸다. 그렇게 한 시간을 버텼다. 마당은 조용해졌다. 불을 꺼놓은 상태 그대로 일주일을 살았다. 당시 신춘문예에 응모할 글을 작업 중이었기에 밤이 되면 작은 촛불 하나만 켜놓고 글을 썼다. 일주일이 지나서는 화장실 불빛만 켜놓고 글을 썼고, 시간이 더 흘러서는 다행스럽게도 평소의 일상으로 돌아왔다.
편안한 일상이 유지될 수 있도록 집 안에 남자가 있는 척했다. 한 남성 유튜버의 영상을 종일 창밖으로 틀어두었다. 남자 목소리가 울려 퍼진 덕분인지 정체불명의 남성은 더 이상 찾아오지 않았다. 그 이후에 대문이 있는 집으로 이사를 가서도 영상이나 라디오를 틀어놓았다. 누군가 떠드는 소리를 듣고 있어야 편하게 잠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불안한 감정을 그대로 방치시킨 적도 있었다. 그러자 우울증에 걸릴 것 같았다. 하는 수 없이 나를 최대한 편안한 상태로 만들기 위해 지금까지 위의 방법을 고수하고 있다. 불안한 감정을 밀어내고 새로운 기운을 받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새로운 기운이 자리 잡은 곳에는 평범한 일상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평범에서 오는 편안함을 유지할 때 미래로 향할 힘이 생기기에 나는 오늘도 불안을 이겨내는 중이다.
이원하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