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권 신공항 문제는 무려 20년이 다 돼 가는 문제다. 높은 산 바로 아래 위치한 경남 김해공항의 안전성 문제가 불거진 2002년부터 부산 가덕도에 신공항을 짓자는 얘기가 나왔고, 노무현·이명박·박근혜정부를 지나 지금까지 온 것이다. 그동안 경남 밀양에 새 공항을 만들자는 안, 김해공항을 고쳐 쓰자는 안, 가덕도 주변을 메워 대규모 국제공항을 짓자는 안이 차례로 나왔다. TK(대구·경북)와 PK(부산·울산·경남)의 지역갈등, 서로 뒤바뀐 여야 정치권의 엇갈린 이해관계, 같은 PK 내에서의 도시 간 저울질 등이 맞물리며 혼전만 거듭해 왔다.
더불어민주당은 내년 4·13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갑작스레 ‘가덕도신공항법’까지 발의한 상황이다. 오거돈 전 부산시장이 성추행 혐의로 사퇴하면서 돌아선 부산 민심을 가덕도신공항이란 ‘당근’으로 달래보겠다는 심산이 다분해 보이는 대목이다.
가덕도신공항 이슈에 가려져 있지만, 언제부턴가 전국 지방의 핵심 도시에선 ‘신공항’ 바람이 불어닥쳤다. 대구공항을 경북 성주·군위로 옮겨 대구·경북 신공항을 만들겠다는 계획은 이미 실행 단계에 돌입했고, 광주와 전남도 오래된 광주공항을 전남 무안으로 옮겨 신공항을 건설하겠다는 그랜드플랜을 짜놓은 상태다. 제주공항도 더 이상 국내외 관광객 수요를 감당하지 못한다는 평가가 나오자 리모델링 확장안이 수시로 불거져 나온다.
갑자기 왜 지방 신공항 전성시대가 도래한 걸까. 지방 공항들은 예전부터 우리 공군과 주한 미공군이 함께 쓰던 군(軍)공항을 확장해 쓰는 형태였다. 이 군공항의 위치는 높은 산 바로 아래쪽이 대다수다. 적의 공습과 공격으로부터 가장 안전하게 전투기를 보호할 수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전투기의 활주거리는 여객기보다 훨씬 짧다. 크기도 작고 속도도 빨라 짧은 활주로에서도 이착륙할 수 있어서다. 그런 공항들이 여객기 위주로 바뀌다 보니 이용객들의 불편은 클 수밖에 없었다. 활주로가 늘어나고 교통연계를 위한 도로, 철도 건설이 빈번해지면서 도시 기능도 왜곡되기 일쑤였다.
수십년간 엄청난 소음공해를 유발하던 군공항을 이번 기회에 도시 밖으로 내보려는 대도시와 주민들의 이해관계도 작동했음 직하다. 군공항이 나간 자리를 새롭게 개발해 이익을 얻겠다는 수지타산 역시 ‘신공항 논리’에 작용했을 것이다. 대구·경북 신공항을 유치하는 대가로 아예 대구시에 군위군을 편입해 달라는 군위군수의 요구를 대구시가 마지못해 들어준 일은 ‘신공항 논리’에 지방자치단체들의 이해타산이 얼마나 얽혀 있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기존 지방공항들의 현실을 보면 신공항이 그리 바람직한 일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 겨울철 스키관광객을 노리고 개장했던 강원도 양양신공항은 해마다 생겨나는 적자로 비명을 지르고 있다. 2016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로 유커(游客) 발길이 끊긴 게 치명타였고, 코로나19 장기화로 국내 여행객마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부산이나 대구, 제주 정도를 제외하면 지방도시들의 공항이용률은 현재의 적자상태를 해결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충북도가 설립하겠다던 청주공항 중심의 저비용항공사 ‘에어로케이’는 설립허가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 타산성이 없다는 중앙정부의 판단 때문이다.
전문가가 아니라도 우리나라 국내항공 수요는 줄면 줄었지 늘어나진 않으리라는 전망을 쉽게 할 수 있다. 4시간 정도면 어디든 자동차와 철도로 갈 수 있는데 굳이 비행기를 타겠냐는 것이다. 지금 당장은 지방 신공항이 ‘먹을 게 많은 파이’처럼 보이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감당할 수 없는 ‘빚덩이’가 될지도 모른다.
신창호 사회2부장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