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 선거 논란이 모두 정리된 것은 아니지만 바이든 행정부로의 전환은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그와 함께 자연스럽게 바이든 행정부가 어떤 정책을 펼칠 것인지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는 인공지능 영역에서는 어떤 정책이 제시될 것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런 맥락에서 흥미로운 시사점을 주는 문서가 11월 17일 미국 관리예산실(OMB)에서 발표됐다. ‘인공지능 응용의 규제를 위한 가이던스’라는 제목의 이 문서는 여론의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하지만 선거 결과를 둘러싼 논란이 진행되고 있음에도 인공지능에 대한 미국 정부의 정책 방향을 정리해 공개한 것이어서 더욱 중요한 의미가 있는 문서라 평가할 수 있다.
이 문서는 2019년 2월 발표된 대통령 행정명령을 언급하고, 이 행정명령에 기초해 작성된 것이라 설명하고 있다. ‘인공지능 영역에서의 미국의 리더십 유지’라는 제목의 행정명령인데, 이에 뒤이어 미국 국가과학기술위원회(NSTC)가 발간한 ‘국가 인공지능 연구개발 전략: 2019 업데이트’ 보고서를 보면 트럼프 행정부의 좀 더 상세한 정책 방향을 파악할 수 있다. 제목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이 보고서는 기존에 발표된 보고서에 대한 업데이트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기존 보고서는 놀랍게도 오바마 행정부가 2016년 발표했던 ‘국가 인공지능 연구개발 전략’ 보고서이다.
트럼프 행정부 및 오바마 행정부의 서로 다른 성향과 무관하게 두 보고서는 유사한 대원칙들을 담고 있다. 이러한 흐름을 정리해 보면, 트럼프 행정부는 오바마 행정부가 설정한 인공지능 국가전략의 방향성을 지속하고 있음을 파악할 수 있다. 바이든 행정부가 오바마 행정부의 정책 방향을 대체로 이어받을 것이라 전제한다면, 결국 인공지능 영역에서는 미국은 몇 차례에 걸친 정권의 변화와 상관없이 일관적인 정책 방향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할 수 있다. 미국의 정책 방향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민간 위주의 인공지능 혁신 생태계 조성 및 이를 위한 적극적인 연구·개발 투자라 할 수 있다.
물론 개략적인 방향성이 유지된다고 하더라도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사안에서는 기존 정책과 차이가 나타날 수 있다. 차이가 나타날 수 있는 요인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생각해 보자. 우선 중국 및 유럽 등 외부로부터의 변수가 있다. 중국은 인공지능 기술에 있어 미국을 빠르게 추격하고 있고, 미국과 기술 영역 전반에 있어 긴장 관계가 형성되고 있다. 한편 유럽에서는 빅데이터 인공지능 영역에 대한 규율에 있어 새로운 시도가 계속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외부적 환경이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둘째 미국 국내적으로는 대규모 정보기술(IT) 기업들에 대한 강한 규제를 요구하는 정치권의 시각도 있고, 개별 주에서 시도되고 있는 입법을 통한 압력도 있다. 특히 이번 선거일에 주민 발의를 통해 통과된 캘리포니아 프라이버시법(CPRA)은 연방 차원에서의 데이터 규율을 둘러싼 새로운 논란을 촉발시킬 전망이다. 셋째 인공지능 기술 도입에 따라 그로부터 발생할 수 있는 사회적 부작용의 가능성에 대해 주목하는 시각이 늘어나는 것이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특히 부통령 당선인인 카멀라 해리스는 안면인식 기술의 활용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이나 형사사법 절차에서의 인공지능 기술 활용에 따른 문제 가능성에 대해 명시적으로 지적한 바 있다.
바이든 행정부의 정책은 취임한 이후에 더욱 구체화할 것이다. 하지만 어떤 방향성을 가질 것인지에 관해 어느 정도는 가늠할 수 있다. 인공지능 영역에서의 미국의 중요성을 고려하면 미리 파악해 참고할 필요가 있다.
고학수 서울대 교수·한국인공지능법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