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제이크 설리번(44)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지명했다. 백악관 역사상 최연소 안보보좌관이다. 소감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설리번은 이렇게 말했다.
“정부에서 이란 협상을 위해 노력하거나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재균형을 위하는 일을 하거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 프로세스와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수년을 보낸다고 해서 국내 문제를 못 보거나 모르는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국민의 초점은 다른 데 있습니다. 그들의 정부가 그들을 위해 일한다고 여기지 않는다는 것에 문제가 있습니다. 국제안보 문제와 함께 국내의 불평등, 혼란, 노동자와 정부 사이의 단절 문제를 상황실을 포함해 백악관의 모든 테이블에 동시에 올려놔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백악관에서 국가안보 이슈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에 대해 너무나 큰 대가(2016년 대선 패배)를 치르면서 알게 됐다는 말이다. 그는 2016년 힐러리 클린턴이 도널드 트럼프에게 패한 일에 대해 진정으로 책임을 통감한다고 고백한 거의 유일한 사람이다. 2016년의 패배는 역사적 차원의 책임이라 했다.
미네소타 출신의 설리번은 힐러리 사람이다. ‘토론과 논쟁’의 선수다. 예일대 역사상 가장 독보적인 논리적 토론가다. 예일대 법대를 졸업하고 고향인 미네소타로 돌아가 미네소타 연방 상원의원인 에이미 클로버샤 사무실을 노크했다. 설리번의 능력과 야망을 알아본 크로버샤는 곧장 힐러리에게 소개했다. 설리번은 2008년 대선 준비를 하는 힐러리 캠프에 합류했다. 그해 9월 버락 오바마가 민주당 대선 후보로 확정되고서는 오바마 캠프에서 외교안보보좌관을 맡았다. 앞서 2008년 예비경선에서 힐러리와 오바마의 피 튀기는 경쟁이 벌어졌을 때 힐러리팀의 선봉에 나섰을 만큼 설리번은 뼛속까지 힐러리 사람이다.
2009년 힐러리가 국무장관이 됐다. 오바마 행정부 1기(2009∼2012년)는 워낙 힐러리가 강성이라서 국무부가 주도했다. 백악관에 오바마의 핵심인 국가안보보좌관 토머스 도닐런, 외교정책 고문인 앤서니 레이크가 있어도 힐러리 측의 영원한 외교보좌관인 리처드 홀부르크가 중심이었다. 힐러리는 아프카니스탄의 난제를 풀기 위해 아예 홀부르크를 아프카니스탄 특사로 임명해 현장에 파견했다. 그리고 홀부르크를 대신해서 자신의 옆자리에 영특하기로 소문난 30대 초반의 설리번을 앉혔다. 홀부르크의 자리를 이어받은 설리번은 힐러리를 밀착 수행했다. 2010년 홀부르크가 지병으로 사망하자 힐러리는 전적으로 설리번에게 정책, 전략, 기획을 의지하게 된다. 설리번은 미친 듯이 공부했다. 또한 설리번은 오바마와 힐러리 양측이 대선 경쟁에서 표출된 갈등과 반목을 조정·해결해 나가는 능력으로 오바마의 눈에도 들었다.
설리번은 힐러리를 수행해 전 세계 115개 국가를 방문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힐러리를 두려워하는 배경에는 푸틴에 대한 설리번의 정확한 문제 지적 덕분이다. 국무장관 4년 동안 힐러리는 홀부르크를 대신할 보물을 얻었는데 그게 바로 설리번이다. 2013년 힐러리가 국무장관을 사임한 후에는 당시 바이든 부통령의 (리비아·시리아·미얀마·이란 관련) 안보보좌관을 지내다 2014년 6월 사임하고 예일대로 돌아가 카네기재단 선임연구원이 됐다. 이후 2016년 힐러리 대선 캠프의 외교안보 수석고문으로 들어갔다.
그는 오바마 행정부 2기 때 바이든 부통령의 보좌관으로 일하면서 바이든으로부터 인정받았다. 이때 바이든의 오른팔인 토니 블링컨(현 국무장관 지명자)과 호흡을 맞춰 이란과의 핵합의를 이끌어 냈다. 블링컨은 2017년 어느 전문기관 포럼에서 이란과의 핵합의에 대해 발표하면서 설리번의 지적·전략적 능력을 언급하면서 “우리는 이데올로그가 아니고 합리적 실용주의자다”라고 했다. 바이든은 블링컨과 설리번의 작품인 이란과의 핵합의는 지구촌 핵문제를 해결하는 일에 있어 가장 모범적인 사례라고 언급했다. 당시 이란과 협상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이란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때문이다. 서남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지역으로 브레이크 없이 확장되는 중국의 진출이 오바마와 바이든을 긴장시켰기 때문이다.
이번 바이든 시대의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지명받은 설리번은 폴리티코와의 인터뷰에서 전염병에서의 회복과 탈출이 우선이며 공중보건을 국가안보의 영구적 우선순위로 만들기 위해 백악관 안보실을 구조조정하겠다고 했다. 특별히 눈에 띄는 말은 “팬데믹이 다시 발생하지 않는지 확인하는 방법은 미국과 세계가 효과적인 공중보건 감시 시스템이 없는 중국의 상황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임을 매우 명확하게 하는 일”이라며 팬데믹에 대한 중국 책임론을 언급한 것이다.
설리번의 중국에 대한 강경 입장은 여러 곳에서 드러난다. 설리번은 지난 5월 포린폴리시를 통해 발표한 ‘중국의 글로벌 지배를 위한 두 개의 길(CHINA HAS TWO PATHS TO GLOBAL DOMINATION)’에서 “중국이 패권을 수립하려는 데 있어서 세계의 국가들은 그것을 수용하기보다 저항하려고 할 것이다. 미국의 동맹국들은 그렇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과 중국을 선택의 대상으로 알리는 뉘앙스다. 여하튼 분명한 것은 바이든 정부의 외교안보의 중심 현안은 ‘중국’임이 분명하다.
바이든의 특징은 사람을 잘 쓰는 리더십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오랜 기간 상원 외교위원장으로 일할 때도 그랬고 부통령으로 재임했을 때, 그리고 이번 선거전에서도 그는 관계된 모든 인력을 적절하게 잘 맞춰 배치했다. 그래서 바이든 진영에는 불화가 없다.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과제는 ‘제이크 설리번, 토니 블링컨’이란 조합을 만들어 낸 ‘조 바이든’의 속내를 침착하게 분석해서 들여다보는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