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일본 게임기 ‘닌텐도 스위치’를 구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웬만한 온라인 매장에 36만원 정가만 내면 다음 날 집으로 온다. 오프라인 매장에선 바로 살 수 있다. 게임기 사는 게 대수인가 싶지만 불과 몇 달 전까지 품귀현상이 벌어진 것을 떠올려 보면 격세지감이다. 게임기 70대 파는 매장에 수천명이 줄을 서고, 중고 시장에는 수십만원 웃돈이 붙었다. 아이뿐 아니라 성인 남녀까지 게임기 한 대 사러 발을 동동 굴렀다.
닌텐도 스위치는 2017년 3월 출시됐다. 과거 3년간 재고가 없어 난리 난 적은 없었다. 상황이 달라진 건 올해 5월이었다. 인기 게임 타이틀인 ‘모여봐요 동물의 숲’이 출시되면서 코로나19 ‘방콕’ 생활을 버티는 데 제격이란 입소문이 퍼졌다. 게임기 수요가 하루아침에 폭증했다. 그런데 중국 생산 공장은 공교롭게도 코로나19 확산으로 문을 닫은 상태였다. 찾는 사람은 많고 물건은 부족하면 결과는 하나뿐이다.
연초 코로나19 1차 확산 당시 ‘마스크 대란’은 이보다 더했다. 공짜로 줘도 안 쓰던 마스크가 졸지에 생존의 필수재가 됐다. 그 전까진 미세먼지가 아무리 심해도 마스크 사러 줄 서는 일은 없었다. 그런데 약국 앞에 하나둘 ‘마스크 품절’ 종이가 붙고, 심지어 외국으로 마스크가 빠져나간다는 소식까지 들리자 사람들은 패닉에 빠졌다. 대란이 민란으로 번질 조짐에 정부는 부랴부랴 수출 금지령을 내리고 ‘마스크 배급제’까지 시행했다. 단기적 수급 붕괴가 초래한 사회 불안의 극단적 형태다.
하물며 게임기나 마스크도 이 난리인데, 부동산 문제는 오죽하랴. 이건 출구조차 보이지 않는다. 수급은 이미 꼬일 대로 꼬여버렸다. 이제까진 내 집 없어도 은행 대출로 전셋집 구하는 게 그리 어렵지 않았다. 지금은 집 사기도, 전세 구하기도 모두 버겁다. 시세가 단기간 오른 데다 물량마저 씨가 말랐다. 수도권만이 아니라 지방까지 ‘불장’(과열된 시장)이다. 급기야 최근 부동산 문제로 다투던 부부 간에 참극까지 벌어지는 상황에 이르렀다. 우리 사회의 ‘부동산 블루(우울증)’가 임계치를 넘었다는 불안감이 든다.
이제 집은 살아남기 위해 반드시 사야 하는 대상이 됐다. 수년간 집을 안 사고 월급만 열심히 모은 사람들은 최근 영문도 모른 채 ‘벼락거지’라는 신조어의 당사자가 돼 버렸다. 그런데 정부와 여당은 내 집이 없어 상대적 자산 가치 하락과 박탈감에 빠진 사람들을 위로한다며 공공임대주택을 지어줄 테니 들어가 살라고 한다. 이런 소리만 하는데 3기 신도시가 아니라 4, 5기 신도시가 나온다 한들 패닉 바잉(공황 구매) 현상은 가라앉지 않을 것이다.
정부는 갭투자도 막고 ‘영끌’도 막았다. 그럼에도 상황이 달라지지 않은 건 진단과 처방 모두 엉뚱했기 때문이다. 갭투자 규제 대책이 정작 무주택 실수요자의 담보·신용 대출까지 꽉 막아 집 살 여력을 줄여버렸다. 여기에 임대차 3법으로 전월세 수급마저 헤집어놨다. 그러고는 계약갱신청구권으로 지금 맞을 매를 2년 뒤 맞게 해줬으니 잘한 것 아니냐고 한다. 사지도, 팔지도, 임차하지도 못하는 시장을 만들어 놓고 속까지 뒤집어 놓는다.
당정청의 부동산 정책은 어릴 적 ‘바람과 해’ 우화를 현실로 보는 듯하다. 바람이 거세게 불수록 나그네는 외투를 단단히 여밀 뿐이다. 그러나 정부·여당은 ‘웃돈 붙은 게임기를 많이 만들면 투기꾼만 좋다’는 식의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고는 게임기 사러 줄 선 사람들에게 “다른 게임기를 사면 되지 않느냐”고 한다. 부동산은 오락이 아니다.
2010년 배추 값 폭등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내 식탁에 양배추로 만든 김치를 올려라”고 했다가 당시 야당이던 지금 여당으로부터 ‘MB 명투아네트’라고 비판받았다. 10년 만에 마리 앙투아네트가 다시 소환됐지만 현 여당은 “언론이 진의를 왜곡했다”고만 한다. 이젠 무슨 말을 해도 통하지 않는 기분이다.
양민철 정치부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