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는 스승의 7주기를 맞아 성묘를 하게 됐다. 수목장으로 모신 묘역은 코로나 사태로 어느 때보다 조용한 편이었다. 주차장을 지나면 영내 교회건물이다. 대부분의 묘역에 십자가를 새긴 것으로 보아 고인들은 크리스천인 듯하다. 잘 정비된 묘역에는 1m 높이의 주목들을 줄 맞춰 심었고, 나무가 고인의 유택이 돼 그늘을 만들어주었다.
우리의 장례문화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전에는 명당이라고 하여 양지바른 산지에 산소를 모시고 잔디를 잘 가꾸는 것으로 만족했다. 그러나 이제는 묘역을 마련할 산지를 확보하는 일이 어렵게 됐고, 산소 한 기를 조성할 때마다 숲이 그만큼 사라질 수밖에 없다. 도시가 비대해지면서 인구도 많아짐에 따라 근교에서 산소를 마련한다는 것은 산 자가 아파트 구하기만큼이나 어렵게 됐다. 그래서 종교단체에서 아파트형 유택을 마련해 칸칸이 유골을 모신다. 어떤 이는 그 안에 갇힌 고인이 너무 답답할 것 같아 수목장이 더 좋을 것 같다고 말한다.
해마다 만추에 찾는 성묫길이지만 올해는 유난히 포근했다. 이태 전에는 11월에 폭설이 내려 언덕길을 걷는데 매우 힘이 들었다. 그러나 이번 성묫길은 온화한 날씨라 선생님께서도 가을 햇볕을 쬐며 기뻐하실 것만 같다. 산 자의 주택이나 고인의 유택이나 남향의 양지바른 곳이면 길지가 아니겠는가. 함께 간 대표자가 추모사를 읽는 도중 구름 사이로 한 줄기 빛이 내려와 눈앞의 주목을 비추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때로 믿을 수 없는 일을 현실에서 경험할 때가 있다. 고인을 기리기 위해 찾은 유택에서 한 줄기 빛을 통해 무언의 교감을 느끼게 되다니. 이런 일을 어찌 설명할까. 함께 자리한 분들이 모두 신비로운 경험이라 했다. 쇼펜하우어의 말을 빌리면 ‘육체적으로 위대한 사람은 거리가 멀어질수록 작게 보이고, 정신적으로 위대한 사람은 거리가 멀어질수록 크게 보인다’고 했다. 해가 갈수록 스승이 더 크게 다가온다.
오병훈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