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경험자도 삶은 계속… 정서적 치유 국가가 나서야”

입력 2020-11-30 21:07
노동영 대한암협회장은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암 경험자들의 정서 관리를 치료 과정의 하나로 자리잡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한암협회 제공

2017년 말 기준 국내 암 유병자(암 치료 중이거나 완치된 사람)는 187만명이다. 전 국민의 3.6%에 해당된다. 5년 넘게 살고있는 사람도 103만명에 달한다. 암 치료술의 발전과 생존율 향상 추세를 감안할 때 이번 달 발표될 2018년 암등록통계와 2019년, 올해까지의 유병자 수 추정치를 합치면 지금은 200만명을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주변에서도 암 경험자를 쉽게 마주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편견이 존재하고 사회복귀에 대한 인식 또한 낮은 게 현실이다. 대한암협회가 최근 올림푸스한국과 함께 ‘암 경험자(생존자)들의 삶은 계속된다’는 의미의 ‘고잉온(Going-on) 캠페인’을 시작한 것도 이 때문이다.

노동영 대한암협회장은 최근 국민일보와 인터뷰에서 “암 경험자들이 겪는 어려움은 경제적 문제부터 실생활 불편, 신체·정서적 문제까지 다양하다”면서 “특히 암 경험자의 정서 관리를 암 치료의 중요한 부분으로 인식하고 치료 과정의 하나로 자리잡도록 해야 하며 국가정책에도 반영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 회장은 서울대병원 유방내분비외과 교수로 유방암 치료의 국내 최고 권위자다. 2016년부터 대한암협회장을 맡고 있다.

-고잉온 캠페인을 소개해 달라.

“많은 암 경험자들은 자신이 암과 싸우고 있다는 사실을 숨긴다. 우리 사회에 여전한 편견 때문이다. 이런 암 경험자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높이고 사회복귀를 돕기 위해 기획됐다. 암 경험자와 전문의가 함께 모여 이야기를 나누면서 마음을 보듬어주는 ‘고잉온 토크(Going-on Talk)’, 심리 치유 프로그램이 가미된 음악예술 활동인 ‘고잉온 하모니(Going-on Harmony)’, 1인 크리에이터 육성을 위한 영상 콘텐츠 교육 ‘고잉온 스튜디오(Going-on Studio)’ 등이 현재 진행 중이다. 치료과정 만큼이나 마음의 짐과 상처도 많을 암 경험자들에게 정서적 치유를 제공한다.”

-반응은 어땠나.

“지난 8월 시작했는데 코로나19 영향으로 최근까지 대부분의 프로그램이 비대면으로 진행됐다. 모니터 너머로 처음 만난 사람에게 개인적 경험과 감정을 공유하는 것이 어렵지 않을까 우려했던 것과 달리 암 경험자들이 빠르게 마음을 열고 동참해 주었다. 토크, 하모니, 스튜디오 모두 1기 활동을 11월 중에 마무리했다. 이제 새로운 2기 참여자들과 활동을 이어간다. 프로그램을 이끄는 의료진, 콘텐츠 제작 전문가 등 멘토들도 더 늘어난다.”

-암 유병자가 계속 늘고 있다.

“평균수명 증가, 식생활 변화, 환경적 요인 등으로 암 유병자가 가파르게 늘고 있다. 아울러 암 조기검진의 활성화와 치료기술의 발전 덕분에 장기 생존하는 비율도 높아지고 있다. 2013~17년 기준 5년 생존율은 70.4%였다. 암에 걸려도 10명 가운데 7명 이상은 완치돼 산다는 얘기다. 약 10년 전(2001~05년) 진단받은 암환자 생존율(54.1%)보다 1.3배 상승했다.”

-암 경험자들의 사회 복귀가 쉽지 않은데.

“한 조사에 따르면 국내 암 경험자의 5년내 직장 복귀율은 30.5%에 불과했다. 반면 해외 학술지에 보고된 유럽 암환자의 직장 복귀율은 62%로 우리 보다 2배가량 높다. 암 경험자들도 여전히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며 그들의 삶을 유지해 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함께 어울려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지난 20일 암 경험자로 구성된 고잉 온 하모니 1기 수강생들이 서울 종로구 대학로의 소극장에서 작품 발표회를 열고 있는 장면. 수강생들이 암과 직면 후 경험했던 감정들을 연기와 몸짓으로 표현하고 있다. 올림푸스한국 제공

-암 경험자들이 원하는 것은.

“지난해 4~5월 사회복귀를 준비 중이거나 치료와 업무를 병행하고 있는 암 경험자 855명을 조사한 결과 일터 내 응원 및 격려 문화를 우선 꼽았다. 내 옆 동료가 암 경험자인데 어떻게 대해줘야 할지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암 경험자의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소통할 경우 불필요한 오해를 살 수 있다. 암 경험자의 입장을 이해하고 서로 도움되는 방향으로 격려하는 문화를 만들기 위한 지방자치단체 또는 기업 교육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암 경험자 205명과 그 가족 133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선 건강 관리, 암 관련, 취미활동에 대한 정보를 가장 원했다. 건강관리 정보 습득의 경우 운동 방법, 식단 관리 등에 대한 특강을 원했다. 암 정보 습득 방법으로는 전문가와 상담을 가장 필요로 했다. 취미활동으로는 문화 예술을 직접 체험하길 원했다. 이번에 시작한 ‘고잉온’ 캠페인은 이를 바탕으로 시작됐다.”

-암 경험자 지원 국내외 정책은 어떤가.

“일본은 2012년부터 5개년 암대책 추진기본계획의 중점 추진 과제로 ‘일하는 세대의 암 대책 충실’이 포함됐다. 이를 위해 후생노동성은 전국 암진료 제휴 거점병원의 상담지원센터에서 취업 문제에 정통한 전문가를 고용한 병원에 보조금 지급 정책을 도입했다. 또 탄력근무 시간제를 활성화해 암 환자 상황에 맞게 일과 삶을 병행할 수 있도록 보장해 주고 있다. 우리나라도 3차 국가암관리종합계획(2016~2020년)에서 암 경험자에 대한 통합지지체계를 구축했지만 실행 수준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암 경험자들이 겪는 어려움은.

“암 경험자들은 집안일 하기, 경제 문제, 만성적 피로감, 외모 변화로 인한 자존감 저하 등 일상 전반에 걸쳐 어려움을 겪는다. 이로 인한 걱정, 두려움, 우울감이 상당하다. 하지만 암 경험자의 정서 치유가 하나의 치료 패러다임으로 자리잡기까진 오랜 시간이 걸린다. 따라서 현 시점에서 암 경험자는 지역사회나 기업 등이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찾아서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고잉온 캠페인을 포함해 암협회의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있다.

-건강관리 어떻게.

“암 경험자들은 암 치료 후에도 고혈압 당뇨병 등 만성질환 발병 여부, 전반적 건강문제에 세심히 신경을 써야 한다. 국가가 제공하는 정기 건강검진 서비스는 꼭 챙겨야 한다. 암 환자들은 코로나19로 병원에 가길 꺼리는 경우가 많은데, 적절한 진단 시기를 놓칠 수 있다. 암 경험자는 건강 관리를 위해 금연, 금주가 기본이다. 육류와 가공식품 섭취를 제한하고 채소·과일을 충분히 먹어야 한다, 꾸준한 운동을 통해 몸의 컨디션을 건강하게 유지하고 적정한 체중 관리도 중요하다. 여러 연구를 통해 비만이 유방암 대장암 전립선암 환자의 2차암 발생이나 예후에 영향을 준다는 결과들이 발표되고 있다. 반대로 두경부암이나 식도암 환자에서는 저체중일 경우 오히려 사망 위험이 높다. 전문 의료진과 상의해 식이·운동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꾸준히 실천할 필요가 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