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성탄절마다 무용과 연극에서 남다른 재능을 인정받은 것이 계기가 돼 연극과에 진학했다. 연예인 친구들, 죽음을 이해한다며 관을 끌고 다니는 친구들, 한 달 내내 머리를 감지 않는 괴짜들과 4년간 생활하다가 졸업하고 본격적으로 연극을 시작했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힘들어 직장 생활을 하면서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던 남편이 건물을 짓고 모텔과 사우나를 시작하면서 우리는 강원도 삼척으로 이사했다.
무대 위가 아니라 좁은 목욕탕 카운터에서 젖먹이 아이를 안고 ‘때 타월 300원, 칫솔은 100원’을 외치는 내 모습, 답답한 시골, 시댁 식구와의 갈등, 방송에 나오는 동기들을 부럽게 바라보며 10년 넘게 소망 없는 목욕탕 아줌마 생활에 눈물만 나왔다. 지친 남편은 술에 만취돼 들어왔고 싸움의 강도가 높아지며 불면증과 우울증에 시달릴 때 외환위기를 맞아 결국 10원도 남기지 못한 채 부도가 났다. 새로운 각오로 인형극단을 창단해 돈을 빌려 제작비와 생활비를 충당하며 밤새 울며 이를 악물고 일해 극단은 조금씩 자리를 잡아갔지만 삶의 짐과 공연에 대한 압박감과 스트레스가 심했다. 오래 교회에 다니며 세상과 교회에 양다리를 걸쳤던 나는, 벼랑 끝에서 비로소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었다.
마침 연극반 강사로 나가다 한마음교회에 다니는 선생님을 만났다. 그분은 세계사를 얘기하며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실제 사건이고, 믿음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주인으로 믿는 것이라 늘 말을 했다. 예수님이 실존인물이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지만 나의 주인이라는 말씀은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다. ‘나만이 아니라 우리들 모두를 위해 죽었잖아요. 하나님이니까 다시 살아날 수 있었던 거 아닌가요?’라며 나는 예수님에게 꼿꼿이 대들고 있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는 나를 살리시려 부활이라는 확실한 증거를 주셨다’는 목사님의 말씀이 가슴에 딱 닿으며 예수님이 달린 십자가가 새롭게 비춰졌다. 내가 인정을 하든 안 하든 부활은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고 구약의 예언대로 세계역사의 중심에 있었다. 사도행전 17장의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다’는 말씀을 통해 부활이 내게 실제가 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며 창세 전부터 계획하신 그분의 사랑 앞에 나는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사람 사이의 죄만 알았던 내게 예수님을 믿지 않고 내가 주인 되어 산 죄가 얼마나 악랄한 죄인지 비춰지자 바로 엎드려 회개했다. 그리고 예수님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했다.
현실은 늘 힘들어도 예수님이 나와 동행하니 매일매일이 너무 기뻤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는 말씀에 모든 염려와 짐을 주님께 맡겼고, 20년 넘게 억누르던 남편을 주께 대하듯 섬기며 가정의 평강을 되찾았다. 3개월간 준비한 2년간 프로젝트 공연을 클릭 한 번 잘못으로 날려 보냈을 때도 주님을 바라보며 벌떡 일어났다.
먹고살기 위해 선택한 인형극이 이제는 많은 분들에게 자연스럽게 복음을 전하는 기회가 되고, 역사인형극을 만들어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어린이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을 전하게 된 것도 너무 감사하다. 나의 갈 길은 이 땅의 썩어질 것이 아니라 오직 주와 복음을 위해 달려가는 것이다. 주님이 나와 늘 함께 하시니 두려울 것이 없다. “주님 사랑합니다.”
이문실 성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