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처음 예수를 믿고 새신자 교육을 받으면서 “기독교는 종교가 아닌 예수의 생명”이라는 말씀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돈만 있으면 마음대로 살면서 자유와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안에서 진리를 접하자 가치관의 혼란이 몰려왔습니다.
예수 믿고 7년간은 구원의 감동과 회개로 울었습니다. 성령 체험이 기뻐서 울고 지옥과 천국을 체험하며 또다시 울었습니다. 거듭난 이후 주님과 동행하는 기쁨으로 ‘할 수 있다, 하면 된다’는 믿음으로 병원과 상가를 돌며 전도했습니다.
그렇게 뜨겁던 신앙생활에 7년 만에 위기가 왔습니다. 선악과의 유혹이 밀려오자 ‘성경적 방법으로는 세상에서 성공할 수 없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믿음이 흔들렸습니다. 그리고 세상의 방법이든 뭐든 성공해서 하나님 나라 위해 써야겠다는 기복신앙이 찾아왔습니다.
저를 다시 세워준 것은 모세오경 훈련이었습니다. 훈련의 목표는 진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나를 포기하는 것이었습니다. 외동딸로 어려서부터 갖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들을 누리며 살았던 탓에 쉽지 않았습니다.
모세오경 훈련 5년 차에 또다시 딜레마에 빠졌습니다. 성경적으로 살면서 사업에 성공하는 것이 너무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다시 들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평신도인데 이렇게까지 신앙생활 해야 하나.’ ‘우리 목사님은 평신도에게 너무 과한 훈련을 요구하시는 것 아닐까.’ 수많은 영적 갈등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응답은 항상 도돌이표였습니다. “순종하라, 위치를 지켜라.”
중대형교회에서 성도로 살아간다면 얼마든지 포장된 모습으로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세오경 훈련은 저의 민낯이 처절하게 드러나는 과정이었습니다. 훈련 때 솔직하게 그대로를 꺼내놓고 교제하는 게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변하지 않고는 순복음삼마교회에서 살아남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훈련의 시간이 지날수록 교회와 가정, 사업장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체화된 모습이 열매로 나타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모세오경 훈련 이후 첫 번째 변화는 가정입니다. 자녀와 관계는 상처로 냉랭했습니다. 사랑하면서도 힘든 관계였습니다. 훈련을 받던 중 하나님 자리에서 내려오려면 먼저 딸에게 솔직하게 사과해야 한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엄마가 부모의 권위를 앞세워 너를 내 뜻대로 움직이려 했던 것, 미안해.”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보다 그 딸을 더 사랑한다”는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무릎을 꿇었습니다. 이후 내 자식이기 이전에 하나님이 부르신 귀한 영혼으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두 번째 변화는 사회생활하면서 내 것을 양보하고 피해를 준 원수 같은 사람을 사랑하고 전도하는 것이었습니다. 힘들었지만, 아브라함의 신앙을 실천할 때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의 선물도 가득했습니다. 육신의 생각을 내려놓고 말씀을 따라 한 걸음씩 성화의 길을 걸어갈 수 있다는 기쁨은 제가 받은 가장 큰 축복입니다.
물질로 거룩한 거부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처럼 영적인 유산을 자녀에게 대물림하는 것 또한 영적 거부가 되는 길이었습니다. 훈련의 결과로 기쁨 없는 비대면 예배의 흔들림을 이겨내고 성도의 위치를 사수하며 출애굽을 향한 새로운 비전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모세오경 훈련은 하면 할수록 영적 끌림이 있습니다. 깊은 은혜의 바다로 저를 인도합니다. 아직 갈 길은 멀지만, 영적 목표지점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만났던 모리아산입니다. 그곳에서 깊이 하나님을 대면하는 면전신앙과 지성소의 삶을 살고 싶습니다. 헌신과 충성은 제 삶의 전부입니다. 끝까지 이긴자로서 천국에 입성하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