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보혈로 죄 사함 받는 속죄제… 삶 속 실천으로 발현돼야

입력 2020-11-27 03:01
일러스트=박예림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시 90:10) 우리 인생은 모두 죄를 짊어지고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사람과 같다.

그러다 예수님을 만나면 사형장이 아니라 낙원으로 인도함을 받는데, 그 갈림길에서 속죄제가 필요하다. 속죄제를 통해 우리의 죄를 용서받고 인생의 여정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성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구원이다. 구원받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바로 우리의 죄를 유일하게 사할 수 있는 예수님의 보혈이다.(엡 1:7)

나는 목회하면서 성도가 변하지 않고 열매 맺지 못하는 데 대해 심한 갈등을 느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못하면 천국에 갈 수 없다고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하기 때문이다.(마 7:19)

그 이유를 찾아보려고 애를 썼다. 그러던 어느 날 마태복음 6장 33절에 시선이 머물렀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우리가 먼저 구해야 할 것이 그의 나라와 그의 의라고 했는데 그 의가 무엇일까.’ 그래서 ‘의’라는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의란 죄와 반대되는 개념이었다. ‘그렇다면 먼저 의를 구하라고 하신 것은 바로 죄 사함의 문제가 아닐까.’

우리가 죄 사함을 얻고 마음에 그의 나라 즉, 천국을 누리면 성령이 함께하시므로 우리 삶에서 모든 것이 더해질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성도들에게 속죄제의 중요성을 훈련하기 시작했다.

속죄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생명의 피’다. 속죄제에는 세 가지 특징이 있다. 첫 번째 특징은 죄에도 세 가지 형벌이 있다는 것이다. 하나는 벌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죄, 즉 배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가벼운 형벌이다. 성경에서는 이를 속건제라 한다. 둘은 몸을 가두는 형벌이다. 돈이나 권력이 아무리 많아도 해결되지 않는 죄가 있다. 그런 죄를 저지르면 감옥에 갇히는 형벌을 받는다. 셋은 사형이다. 사형은 악행이 반복되거나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극악한 범죄일 경우 부득이하게 내린다. 속죄제는 사형에 해당하는 죄를 해결하기 위해 누군가가 생명의 피를 흘리게 돼 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 9:27) 그런데 기적과 같은 일이 벌어진다. 죽음 형장, 심판대로 향하다가 예수님을 만나면 사면을 받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속죄제란 사면을 받는 놀라운 은혜 이야기다.

속죄제의 두 번째 특징은 신분에 따라 죄의 경중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속죄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제사장의 죄다. 이유는 간단하다. 제사장이 죄를 범하면 국민 전체가 죄를 범한 것과 같은 무게로 취급받기 때문이다. 종교지도자가 짓는 죄가 얼마나 위험한지 알 수 있다. 하나님은 목회자 한 사람이 범한 죄를 성도 전체가 범한 죄만큼 크게 생각하신다. 목회자들은 속죄제를 매일 드린다는 자세로 성결하게 살아야 한다. 이런 배경에서 성도들에게 속죄제를 훈련할 때 예수 보혈이 얼마나 중요한지 가르친다. 찬송도 보혈 찬송을 중점적으로 외우도록 훈련한다.

세 번째 특징은 속죄제의 피가 왜 그렇게 중요한가에 있다. 보혈 없이는 제단이 깨끗해지지 않기 때문이다. 속죄제의 수송아지나 양을 잡으면 제일 먼저 제단을 성결하게 하려고 그 피를 제단에 붓는다. 그래서 교회는 주님의 보혈로만 성결하게 되고 성도는 예수의 피로만 구원받을 수 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려면 반드시 예수님의 보혈이 필요하다. 속죄제에서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피를 들고 장막에 나아가 그 피를 휘장에 일곱 번 뿌려야 성막문이 열리기 때문이다.(히 10:19~20)

제사장이 성막에 들어가면 향단의 뿔에 피를 바른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 보혈이 없이는 상달되지 않음을 의미한다. 신앙생활은 주님의 보혈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어떠했는가. 휘장에 피를 뿌리고 제사장도 피 뿌린 옷을 입어야 했다. 법궤에도 피를 뿌려야 죽음을 면할 수 있지 않았는가. 성막생활이 온통 피로 물들어 있듯이 교회 생활도 죄를 속하신 예수님의 보혈로 가득해야 한다.

피가 없는 곳에는 자신의 의로움이 보이고 세상 정의가 드러난다. 그곳에서 생활하면 윤리나 도덕이 전부인 종교인으로 전락하고 만다. 우리가 다른 성도를 용서하고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이유도 보혈 때문이다. 하나님께 조건 없이 헌신하는 것도 보혈 때문이다.

속죄제의 피 외에 우리가 자랑할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속죄제를 통해 주신 새 생명을 살아야 한다. 그리고 성도들이 이긴자처럼 살 수 있도록 훈련해야 한다.

우리에겐 보혈이 있다. 그 보혈은 사망과 죽음을 이기는 부활의 능력이다. 성도들이 죄책감이나 죄의식에서 벗어나 변화되는 길은 어디에 있는가. 당당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갈 수 있도록 골수까지 속죄제를 예수 보혈로 훈련하는 데 있다.

이일성 목사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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