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기자] 검찰 개혁인가, 길들이기인가

입력 2020-11-26 04:06

2013년 9월 6일 한 일간지에는 채동욱 당시 검찰총장에게 혼외자가 있다는 의혹이 1면 머리기사로 보도됐다. 기사를 보고 ‘아직 잠에서 덜 깼나’ 싶었을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황교안 당시 법무부 장관이 총장에 대한 감찰을 지시했고 총장은 의혹 제기 7일 만에 낙마했다. 사상 초유의 일이라는 제목들이 이어졌다.

7년이 지난 현재 검찰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은 과거와 데칼코마니처럼 유사하다. 한 지상파 방송사는 지난 3월 윤석열 검찰총장 측근 검사장이 채널A와 유착해 여권 인사를 겨냥하려 했다는 취지의 보도를 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감찰을 지시했고 서울중앙지검은 관련 수사에 착수했다. 추 장관은 윤 총장 가족 의혹 등 다수 사건에 수사지휘권까지 발동했고, 결국 총장 직무 배제라는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

채 전 총장과 윤 총장 모두 정권에 미운털이 박힌 이유는 명확해 보인다. 정권의 심장부를 찌르는 수사를 주도했거나 지휘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추 장관은 야당 의원이었던 2013년 11월 “열심히 하는 (채동욱) 총장을 내쫓았다. 국정원 대선 개입 수사에 적극적이지 않았다면 비리도 감춰 줬을 것”이라며 당시 정홍원 국무총리를 몰아붙였다. 문재인 대통령도 의원 시절 채 전 총장 사퇴와 관련해 ‘결국 독하게 매듭짓는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지금은 당시의 박근혜 대통령처럼 침묵하고 있다. 우리 편이 아니다 싶으면 검사들을 좌천시키는 ‘인사 스타일’도 과거 정부와 빼닮았다. 이쯤 되면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총장 찍어내기’ 각본이라도 공유하는 것 아닌가 싶을 정도다.

국민이 바라는 진정한 검찰 개혁은 권력에 굴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수사하는 검찰의 탄생일 것이다. 하지만 이번 정부의 개혁도 결국 권력 눈치를 보라고 다그치는 방향으로 진행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채 전 총장 사퇴 5년 뒤 검찰은 혼외자 의혹 뒷조사에 국정원이 조직적으로 개입했고 청와대 민정수석실도 관여한 사실을 밝혀냈다. 언젠가는 현 정부의 윤 총장 찍어내기도 검찰 개혁이었는지 길들이기였는지 답해야 할 시간이 올 수 있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