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 리더는 어디로 갔는가?

입력 2020-11-26 04:02

유명한 포크가수이자 저항운동가였던 피트 시거는 1955년 ‘꽃들은 다 어디로 갔나’라는 곡을 발표했다. 꽃을 꺾은 아가씨들의 연인이 모두 군대에 끌려가 무덤으로 사라졌다는 내용의 가사 때문에 이 노래는 1960년대 반전운동의 대표적 운동가로 불려졌다. 그런데 요즘 우리 주변을 보면 꽃들이 아니라 리더들이 다 어디로 갔나 노래하고 싶어진다. 어느 때보다 리더가 필요한 지금 리더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 사회에 리더가 없을 리 없다. 모든 기관에는 기관장이 있고, 부대에는 부대장이 있고, 기업에는 최고경영자(CEO)가 있고, 정당에는 대표가 있다. 그동안 리더십 연구를 통해 리더의 조건과 자질, 리더십의 종류와 유형 등에 대한 상세한 이론과 사례들이 축적돼 왔다. 그뿐 아니라 대학교에서는 리더십 특강을 통해 학생들을 리더로 키우려 노력하고, 기업과 관청에서도 관리자들에게 리더십 함양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그런데 왜 리더가 보이지 않을까? 리더가 리더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거나 리더로서 해서는 안 될 일을 하기 때문이다. 그럼 리더는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해서는 안 되는가?

리더는 문제 해결을 위한 의사 결정을 해야 한다. 의사 결정은 리더의 권한이자 임무이다. 필요할 때 적절한 의사 결정을 내리는 리더가 훌륭한 리더이다. 전쟁터에서 장군은 공격의 시점과 작전을 결정해야 하고, 기업 CEO는 언제, 어떻게 투자를 해서 경쟁에서 앞서나갈지 결정해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의사 결정을 기다리는 문제들이 쌓여 있다. 살 집을 못 구해 발을 구르는 사람이 많고, 생계를 꾸리기 어려워 빚을 얻는 사람도 많다. 일자리가 불안해 마음을 졸이고, 과로를 못 견뎌 쓰러지는 노동자가 늘고 있다. 부모들은 자녀가 비대면 교육에서 뒤처지지 않을까 마음을 졸인다. 그런데 이 문제들에 대해 어려움을 참고 함께 견디자고 하는 리더만 있지 문제 해결을 위해 과감한 의사 결정을 내리는 리더가 보이지 않는다.

리더는 자신이 내린 의사 결정에 대한 지지와 협력을 동원하고 그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한다. 전쟁터의 장군은 병사 사기를 올려야 하고 작전 수행을 치밀하게 챙겨야 한다. 기업 CEO는 사업 추진을 위해 관련 기업의 제휴와 협력을 얻어내야 한다. 의사 결정 지체도 문제이지만 결정된 정책 추진도 미진하다. 경제 회생을 위한 뉴딜을 선언했지만 기업들과 손잡고 가시적으로 경제를 바꾸는 노력은 찾기 어렵다. 남북 관계의 근본적·획기적 전환을 공언했지만 우리와 보조를 맞추겠다는 관련 당사국은 없다. 개혁의 기치를 높이 들었지만 갈등만 늘고 개혁의 성과는 잘 보이지 않는다. 이 답답한 상황을 반대 세력, 심지어는 국민 탓으로 돌리려 하는 리더만 있지 책임을 지겠다는 리더가 보이지 않는다.

리더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람들을 이간질하고 분열시켜서는 안 된다. 분할 통치는 외세가 우리를 지배할 때 즐겨 사용했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이 분단과 지역주의를 조장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크다. 지금은 어떤가? 우리는 갈등과 분열에서 벗어난 통합된 사회에 사는가? 누구도 그렇다고 할 사람은 없다. 적을 비판하면 누구나 동지, 적에 찬성하면 누구나 적이라는 양극화 논리가 우리 사회를 지배한다. 진실과 논리는 사라지고 거짓과 궤변만 남았다. 원칙과 예의를 지키는 합리적 토론 대신 일방적 주장만이 난무한다. 제로섬은커녕 네거티브섬인 이전투구에 뛰어드는 리더만 있지 합의를 위해 인내심으로 설득하는 리더가 보이지 않는다.

리더는 말을 바꾸면 안 되고, 소통을 피해서도 안 된다. 일관성 있는 리더가 사람들의 신뢰를 얻는다. 자신의 유리 혹은 불리에 따라 말을 바꾸고, 내 경우와 타인의 경우에 이중잣대를 적용하는 사람은 리더가 아니라 모리배이다. 젊은 세대와 국민 다수를 실망시킨 불공정 시비 상당수가 특권의식에 사로잡힌 리더의 자녀에 대한 특혜에서 비롯됐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소통을 피하는 리더는 오류를 바로잡을 기회를 놓치고 오만과 아집, 독선에 빠진다. 당장 국민의 따끔한 지적과 문제 제기를 피하다가 나중에 더 큰 저항에 직면했던 리더들을 우리는 최근까지도 반복해서 보아왔다. 그런데도 끊임없이 말을 바꾸고 이중잣대를 들이대며 소통을 회피하는 리더만 있지 손해를 보더라도 일관성을 지키고 귀를 열어 비판과 이견에 귀기울이는 리더는 보이지 않는다.

한준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