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무용론이 종종 대두된다. 일부 신학교 운영자와 자수성가한 목회자 입에서 나오는 소리다. “신학 공부를 많이 한 목사는 목회에 성공을 못 한다.” “성경 많이 읽고 열심히 기도하면 교회가 부흥한다.” “신학은 이성적 작업이기 때문에 신앙을 약화한다.” 수사학적 반어법이라 해도 이런 말을 하는 이들의 머릿속엔 반지성주의가 신앙이라 믿는 원리주의가 깊게 박혀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나님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면서 어떻게 하나님을 섬기겠는가.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인지 배우지 못하면서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말할 수 있는가. 창조 세계에 관한 창조주의 의도와 목적을 알지 못하고 어떻게 창조 세계에서 제대로 살 수 있겠는가. 하나님이 자기가 만든 창조 세계가 엉망진창이 될 때 가만히 있겠는가. 옷소매를 걷어붙이고 고치려 하지 않겠는가. 이걸 신학에선 ‘하나님의 경륜’이라 부른다.
경륜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오이코노모스’로 ‘오이코스’(집)와 ‘노모스’(규칙)의 합성어다. 집에는 일정한 규칙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경제란 의미의 영어 ‘이코노미’도 헬라어 ‘오이코노모스’에서 유래했다. 경제는 원래 ‘가사경제’를 뜻했던 셈이다. 가사경제는 달리 말해 집안을 살리는 일이다. 집안을 생명으로 가득하게 하는 일이다. 하나님의 경륜은 망가진 이 세상을 새롭게 해 생명으로 가득하게 하는 것이다. 이를 전문 용어로 ‘구원의 경륜’이라 부른다.
신학은 하나님의 구원 경륜에 정점을 이룬다. 신학을 공부하는 이유 역시 망가진 창조 세계를 회복하는 하나님의 위대한 회복(구원) 프로젝트에 동참하기 위해서다. 따라서 신학은 궁극적으로 세상에 생명을 줘야 한다.
신학의 존재 이유를 다시 묻는 책이 예일대에서 신학을 가르치는 미로슬라브 볼프와 그의 동역자 매슈 크로스문의 공동작업으로 세상에 나왔다. 신학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집(세계)에 관한 학문이라는 게 핵심이다. 저자들은 ‘인간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집’이란 이미지로 집약되는 참된 삶의 이야기를 분별하고 진술하는 것을 신학의 주된 목적으로 삼으라고 말한다. 이른바 공공신학을 지향하는 책이다.
다음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신학을 공부하려는 사람, 신학을 공부하는 사람, 신학 공부를 마쳤다고 생각하는 사람, 신학의 중요성을 한 번도 심각하게 생각해보지 못한 사람, 신학이란 학문에 위축되거나 열등감을 느끼는 사람, 신학교를 설립하고도 왜 했는지 모르는 사람, 신학을 가르치는 사람, 신학 공부한 사람을 목사로 왜 청빙해야 하는지 궁금한 장로와 권사, 신앙과 신학의 관련성을 알고 싶은 교회 청년, 교회에 오래 다녔지만 신앙과 신학을 별개라고 생각하는 사람. 반지성주의가 어느 때보다 극성을 부리는 한국교회에 이 책을 권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