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강석 목사의 블루 시그널] 보랏빛 소들이 몰려오게 하라

입력 2020-11-26 03:01

세계 최고의 마케팅 전문가 세스 고딘이 하루는 프랑스 시골을 여행하다 젖소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 모습이 너무 평화롭고 아름다워 반해버리고 만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계속 똑같은 풍경이 이어지자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그때 머릿속에 이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누런 소들 가운데 보랏빛 소(Purple cow)가 있다면 어떨까.’ 보랏빛 소가 단숨에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황홀경에 빠지게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는 그날의 경험을 바탕으로 ‘보랏빛 소가 온다’라는 책을 쓴다.

조선 말, 한국교회도 보랏빛 소와 같았다. 대한민국 건국위원들은 민족의 정신적 근간을 이룰 새로운 종교를 찾았다. 고려는 불교를 건국정신의 중심으로 삼았고 조선은 유교를 건국정신의 근간으로 삼았다. 그러나 대한민국 건국위원들이 받아들이고자 했던 건 푸른 눈의 선교사들이 전해준 기독교였다. 기독교는 우상과 미신, 가난과 질병으로 가득했던 조선 땅에 학교와 병원을 지어 문맹을 깨우치고 구제를 하면서 민족 종교로 자리 잡았다. 당대 최고의 지식인들이 교회로 몰려왔다. 춘원 이광수는 성공하려면 교회로 가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모습은 어떤가. 김형석 교수는 저서 ‘기독교, 아직 희망이 있는가’에서 한국교회가 ‘교회주의적 사고’에 갇혀 세상과 소통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교회에 등을 돌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럴 때 한국교회는 다시 보랏빛 소와 같은 존재가 돼야 한다. 소의 본질은 변할 수 없다. 그러나 빛깔은 새롭게 변할 수 있다. 우리가 보랏빛 소가 되든지, 보랏빛 소가 몰려오게 하든지 해야 한다.

세계의 흐름을 보면 ‘꼰대’나 ‘스트롱맨’이 쇠퇴하고 소통과 공감의 지도자들이 주목받고 있다. 특히 코로나 시대에는 포용과 공감의 리더십이 필요하다. 스트롱맨은 역효과만 나타난다. 진보세력도 과격한 이데올로기 투쟁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닫고 문화 마르크스주의로 선회해 사회 문화 예술 미디어에 진보적 사상과 가치를 확산시켜 나가지 않았는가. 한순간에 변화시킨 게 아니라 수십 년 전부터 NGO와 언론, 문화예술 활동을 통해 사람들의 인식을 변화시켜 나간 것이다.

한국교회 역시 기독교 세계관과 가치관을 담은 문화를 확산시키는 고도의 사상전·문화전을 펼쳐야 한다. 싸움의 기술도 모르면서 무조건 앞장서서 대중의 감정을 거스르는 발언을 내뱉어야만 용기 있는 사람이 아니다. 지금은 소통과 설득의 전략이 효과적인 시대다.

한국교회는 기본적으로 국민 보건을 위해 마스크, 손 소독, 거리두기 등 방역수칙을 더 잘 지켜야 한다. 그러나 정부에서 필요 이상으로 예배의 본질까지 간섭하는 것은 목숨을 걸고 막아야 한다. 애당초 한국교회는 자율방역으로 선제적 대응을 하며 정부가 예배에 간섭하는 것을 막았어야 했다. 한국교회가 원 리더십, 원 메시지를 내지 못하고 우리만의 틀에 갇혀 뒷북만 치는 동안 국회에 감염병예방및관리에관한법률 일부 개정안이 66개나 발의됐다. 이 법의 해석 범위를 넓히면 교회 예배에도 지장을 주게 된다.

이런 법안을 전략적으로 막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 자기하고 안 맞는다고 비난하고 내부 총질을 하면 어떻게 승리할 수 있겠는가. 내부에서는 서로 성향과 방법이 다르더라도 힘을 모아 전략적으로 싸우는 기술을 연마해야 한다. 동시에 밖을 향해서는 우리 모두가 보랏빛 소 같은 이미지를 확산시켜야 한다. 서양에서는 보랏빛이 겸손한 사랑과 우정, 부활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제 우리 모두가 내부 결속을 더 강화하고 바깥을 향해서는 리마커블(remarkable)한 이미지를 구축해 가자. 그럴 때 보랏빛 소와 같은 사람들이 다시 교회로 몰려오게 될 것이다.

새에덴교회 예장합동 총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