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재판에서 특검 측이 “재판부가 아쉽게도 박근혜 전 대통령의 요구에 의한 ‘수동적 뇌물공여’라고 여러 번 말했다”고 하자 재판장이 직접 “그런 말을 한 적 없다. 재판부가 한 이야기만 하라”고 언성을 높였다.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판사 정준영) 심리로 23일 열린 이 부회장의 파기환송심 공판에서 특검 측은 “재판부가 (이 부회장의 범행을) 박 전 대통령 요구에 따른 수동적 뇌물공여라고 오해할 수 있는 취지로 여러 번 말했다”고 주장했다. 특검은 “이 부회장이 박 전 대통령의 뇌물 요구에 편승해 적극적으로 뇌물을 제공했다”는 지난해 8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시를 근거로 이 부회장을 무겁게 처벌해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해 왔다.
재판장인 정준영 부장판사는 특검의 발언을 제지하면서 “오해 사는 말을 하는데 대통령 요구에 의한 수동적 뇌물공여란 말을 한 적 없다. 재판부가 한 이야기만 하라”며 날선 반응을 보였다. 이어 “대통령이 요구했다는 건 정확하지 않느냐. 재판부는 사실만 얘기했다”며 “(수동적 뇌물공여라고) 평가한 적이 없는데 좀 자제해 달라”고 당부했다. 특검 측은 “혹시 오해하고 계신 게 아닐까 염려돼서 말한 것”이라며 “유념하겠다”고 답했다.
이날 특검은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활동보다 이 부회장의 뇌물공여 동기 등에 대한 양형심리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앞서 대법원은 이 부회장의 뇌물공여·횡령액수를 86억여원으로 판단했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액이 50억원 이상이면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해진다. 집행유예는 징역 3년 이하인 경우 선고할 수 있는데 재판부가 양형 감경 사유를 추가하지 않으면 감형은 어려운 상황이다. 이 때문에 특검 측은 삼성 준법감시위 활동을 ‘진지한 반성’ 등 이 부회장에게 유리한 양형 사유로 삼아선 안 된다며 재판부와 갈등을 빚어왔다.
특검은 이 부회장과 박 전 대통령의 관계를 가리켜 “최고 정치권력자와 최고 경제권력자로서 상호 윈-윈의 대등한 지위였다”고 표현했다. 삼성물산 회계직원이 10억원을 횡령했다가 징역 4년을 받은 사건을 언급하며 “이 부회장 등이 이보다 낮은 형을 선고받는다면 법치주의가 실종됐다는 평가를 받을 것”이라는 주장도 펼쳤다. 이 부회장 측 변호인은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 딸 정유라에 대한 승마지원은 박 전 대통령의 강한 질책으로 시작된 것”이라며 “거절할 수 없는 요구에 따라 수동적·소극적으로 지원한 것”이라고 항변했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