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19일 공급 대책으로 발표한 11만4000가구의 전세 물량은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으다)의 산물로 평가된다. 공공임대 아파트부터 다세대 주택, 빈 상가까지 가능해 보이는 물량을 총동원했다. 하지만 황급히 물량을 편성하려다보니 내용이 부실하다는 지적이 뒤따른다. 3개월 이상 공실로 남겨져 있던 공공임대물량을 전세로 공급하겠다는 방안부터 비판의 과녁이 되고 있다. 사람이 안 들어 온 데는 다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당장 급한 곳에 풀리는 물량이 적다는 점도 실효성을 의심하게 만든다. 내년 상반기 중 수도권에 풀리는 전세 물량은 2만4200가구다. 이 중 전세난이 가장 극심한 서울 지역에 공급 가능한 물량은 채 1만 가구가 안 된다. 숙박시설을 개조하겠다는 구상에 대해선 정부가 공급 숫자 부풀리기에만 치중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가 내놓은 전세형 공공임대를 뜯어보면 크게 3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아파트 유형인 공공임대주택(3만9100가구)과 연립주택이나 오피스텔 등 다세대 유형인 신축매입약정(4만4000가구)·공공전세주택(1만8000가구)이 큰 축이다. 여기에 숙박시설이나 빈 상가 등을 리모델링해 공급하는 1만3000가구가 더해진다.
가장 주목도가 높은 유형은 전세난의 발화점인 아파트형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수요를 충족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정부는 신속한 공급을 위해 3개월 이상 입주자가 없는 빈집 상태인 공공임대주택을 전세로 돌리기로 했다. 다음달 말 입주자를 모집해 내년 2월까지는 입주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전세난이 심각한 서울 지역에서 공급 가능한 물량은 4900가구에 불과하다. 경기도 등 수도권으로 눈을 돌려도 1만800가구가 전부다.
또 공실인 곳이 소형 아파트 중심인 데다 교통 등 인프라가 부족한 곳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수요자들의 ‘높아진 눈’을 충족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국토교통부는 전국 무주택 가구가 789만 가구 정도라며 수요가 충분하다고 보고 있다. 1인 가구가 급격히 증가한 점에서 소형이라도 수요가 있을 것이라는 분석도 덧붙였다.
다세대를 포함해도 물량이 충분하다고 말하기가 힘들다. 다세대의 경우 민간 건설사가 신축한 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매입해 운용하는 신축매입약정 물량이 가장 많다. 짓는 데까지 시간이 걸린다는 얘기다. 그러다보니 내년 상반기 중 풀 수 있는 물량이 한정된다. 전세난 중심에 서 있는 서울의 경우 공공임대주택과 다세대를 다 합해 8900가구를 내년 상반기에 공급한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내년 상반기까지 초단기 공급 물량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한 것에 비해 초라한 수치다.
빈 상가나 숙박시설을 개조하는 것 역시 정부의 전향적 구상에 비해 시장 수용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동산 카페에서는 비좁은 호텔 객실에 살라는 거냐며 날 선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전문가들 반응도 싸늘하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정부가 숫자 늘리기에 급급한 것 같다”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호텔 개조의 경우 전체 물량의 2~3% 안 되는데 마치 전체의 90%를 점하는 것처럼 알려져서 당혹스럽다. 호텔 리모델링은 유럽 등에서 굉장히 호응도가 높은 사업”이라고 설명했다.
세종=신준섭 이종선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