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적 폭우, 이젠 일상… 홍수기 만이라도 권한 일원화해야”

입력 2020-11-19 04:01
대한하천학회 회장인 박창근 가톨릭관동대학교 토목공학과 교수가 지난 12일 서울 강남구 서초동 학회 사무실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박 교수는 “올여름 홍수 피해는 기록적인 폭우와 부실한 제방 관리가 복합 원인으로 작용했다”며 “홍수기 만이라도 물관리 의사 결정 권한을 한 곳으로 통합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부가 올여름 홍수 피해와 관련해 원인 조사를 진행 중인 가운데 대한하천학회장인 박창근 가톨릭관동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54일간의 기록적인 폭우’와 ‘부실한 제방 관리’를 주요 원인으로 지목했다. 또 일부 지역의 마을 침수는 지방자치단체의 행정상 문제와도 깊은 연관이 있다고 주장했다. 박 교수는 지난 12일 서울 서초동 학회 사무실에서 진행된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부처에 흩어져 있는 물관리 기능을 단기간에 통합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며 “홍수기 만이라도 물관리 의사결정 권한을 한 곳으로 통합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올여름 홍수 피해 현장은 어땠나.

“지난 8월 8일 집중호우로 제방이 무너진 섬진강을 먼저 찾았다. 그리고 다음 날 제방이 유실돼 마을이 물에 잠긴 낙동강을 다녀왔고 합천댐에는 3번 갔다. 열흘 동안 정신없이 수해지역만 찾아다녔다. 현장엔 홍수 피해 원인과 흔적이 남아 있었다. 낙동강은 합천보 직상류 모래 제방에서 발생한 파이핑 현상(모래 지반이 다공질 상태가 돼 지반 내 파이프 모양의 물길이 뚫리는 현상)으로 제방이 무너졌고 섬진강 남원의 제방 붕괴는 측방침식이 원인이었다. 섬진강 본류 제방은 높은데 하동 화개천 제방이 낮아 침수 피해가 생겼다. 부실한 제방 관리가 홍수 피해를 키운 것이다. 그런데 현장 상황을 잘 모르는 사람들의 말을 인용해 사실과 다른 내용이 미디어를 통해 주목받은 점이 안타까웠다.”

-홍수 피해를 인재(人災)로 보는 건가.

“올여름 홍수 피해는 기록적인 강수량과 부실한 하천 제방 관리가 복합적인 원인이었다. 천재(天災)도 있지만 인재 요인도 있었다는 얘기다. 한 지방자치단체가 배수관 역류방지시설을 설치하지 않은 사실도 확인했다. 홍수가 발생하면 배수관을 통해 빗물이 역류하는데 이를 방지하는 시설이 없어 마을이 침수 피해를 크게 입은 것이다. 해당 지역 주민들이 수년 전부터 시설 설치를 요구했는데 군(郡)이 끝까지 뒷짐만 진 결과다. 하천 관리는 국토교통부의 몫이다. 홍수 대책에 있어 우선순위는 제방 관리다. 국토부는 이번 홍수 피해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홍수기에 국토부는 눈을 감았고 행정안전부는 먼 산만 바라봤다. 그리고 환경부는 의지가 안 보였다.”

-댐 운영 규정 위반이나 문제는 없었나.

“댐 운영 규정과 실적은 모두 공개되는 자료다. 일반인은 해석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지만 전문가들이 보면 규정 위반 여부를 금방 알 수 있다. 올여름 홍수기에 한국수자원공사가 댐 운영 규정을 위반했는지 안 했는지 살펴보면 답은 금방 나온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댐 운영 문제는 발견되지 않았다. 미미하게 계획홍수위를 늘린 점은 있었지만 댐 운영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댐 방류가 홍수 피해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 건 이해하기 어렵다. 환경부마저 댐 운영의 문제만 살펴보고 관련자를 처벌하겠다고 했었는데, 댐만 보겠다는 발상 자체가 문제였다고 생각한다. 홍수 피해 이후 피해 지역에 대한 국민 성금모금운동도 보이지 않았다. 공학적·과학적 근거에 의한 주장보다는 정치적 목적이 앞서는 섣부른 대응이 주민들에게 더 큰 피해를 준 게 아닌가 싶다.”

-기후변화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올해 같은 기록적인 폭우는 ‘변수’가 아닌 ‘상수’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장마가 더 길어지고 태풍이 수차례 내리치는 이상기후는 더 이상 ‘어쩌다 한 번’ 발생하는 게 아닐 거란 의미다. 대책 마련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까닭이다. 매년 강수량에 맞는 제방을 뚝딱 쌓을 수도 없고 당장 댐을 짓는 건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노아의 방주’ 같은 치수 대책은 경제적이지 못하다. 모든 하천의 제방을 높이려면 막대한 돈과 시간이 든다. 올여름 장마 때 300~500년 빈도로 비가 쏟아졌는데 멀쩡하게 버텨낸 100년 빈도의 하천도 많았다. 이는 여유고(2m)가 뒷받침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이미 여유고라는 이름으로 홍수 예방사업을 해왔다. 다만 대응 능력과 경험이 부족했다. 정부는 전문가들과 부실한 제방 관리에 대한 일제조사를 하고 댐과 제방의 운영 효율화로 경제성을 확보하는 방안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한국의 물관리 정책을 평가한다면.

“소하천정비법을 하천법에 통합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같은 하천인데 하천법은 국토부·환경부가 관리하고 소하천정비법은 행안부 소관이다. 하천을 하나의 덩어리로 보고 치수 대책을 세워야 하는데 정책이 제각각인 셈이다. 데이터 관리도 부실하다. 한국의 총 용수량 중 농업용수가 60%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생활용수와 공업용수가 각각 30%, 10% 수준이다. 비중을 고려하면 농어촌공사는 양수장의 농업용수 사용 데이터를 기록하고 관리해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못한 상태다. 농업용수는 물값도 없다. 농업용수면 어떤 식으로든 용인해야 한다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깔려 있다. 최소한의 데이터마저 없는 깜깜이식 물관리는 멈춰야 한다. 최소한 물 이용에 관한 정보를 통합 관리하는 시스템이라도 만들어보자는 것이다. 통합 물관리 체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법·제도 정비가 선행돼야 한다.”

-바람직한 물관리 일원화 방향은.

“물관리 일원화 체계는 많이 미흡하다. 2018년 6월 물관리 기능 일부를 국토부에서 환경부로 넘기는 법안이 통과됐지만 결국 물그릇(하천)에 담긴 수량·수질 기능만 옮기고 물그릇은 그대로 남겨뒀다. 물그릇과 그 안에 담긴 물관리 기능을 통합했을 때 비로소 물관리 일원화는 완성된다고 본다. 국토부가 하천 관리를 제대로 할지도 의문이다. 현재 국토부에는 하천계획과만 있다. 실·국도 아니고 ‘과’ 단위에서 한국의 하천을 관리한다는 발상 자체가 난센스다. 환경부를 비롯해 국토부·농식품부·행안부·산업통상자원부 등에 흩어져 있는 물관리 기능을 단기간에 일원화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이해관계가 첨예하다. 현실성을 고려한다면 홍수기 만이라도 물관리 의사결정 권한을 한 곳으로 통합하는 작업부터 시작해야 한다.”

글·사진=최재필 기자 jpcho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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