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이 내년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내세울 후보를 찾지 못하는 구인난에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달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를 만난 데 이어 당내 후보군 인사들과 릴레이 회동을 했지만 이렇다할만한 카드를 찾지 못한 눈치다. 이는 이명박·박근혜 대통령 재임 동안 뿌리 깊은 계파 정치가 반복되면서 소신 행보를 펼칠 소장파가 실종된 데다 잠재력 있는 정치 신인 발굴에 소홀했던 탓이라는 분석이다.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이은 21대 총선 참패로 당이 자생력을 잃으면서 ‘깜짝 스타’가 등장할 여건이 마련되지 못했다는 지적도 뒤따른다.
국민의힘은 내년 4월 재보선 경선룰은 일찌감치 마련했다. 하지만 정작 선거에서 뛸 참신한 후보는 찾지 못하고 있다. 급기야 당내에선 차기 대권 도전을 선언한 유승민 전 의원의 서울시장 보궐선거 차출론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유 전 의원은 18일 “저는 그동안 대선 출마 의지를 여러 차례 밝혀왔던 사람”이라며 “이제까지 서울시장 출마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당 안팎에선 경쟁력 있는 인물이 사라진 배경으로 18대 국회 이후 소신 있는 정치 신인의 명맥이 끊어진 점을 지목한다. 계파 갈등의 여파로 18~20대 총선에서 인재 영입과 육성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못했다는 것이다.
과거 신한국당 시절이던 15대 총선 때는 김영삼 전 대통령이 김문수 전 경기지사, 이재오 전 의원, 홍준표 의원을 나서서 영입했다. 구 민정계와 결별하고, 신한국당의 전신인 민주자유당의 과거를 지우겠다는 김 전 대통령의 쇄신 의지가 강하게 작용하며 개혁공천이 이뤄졌다는 평가다.
‘한나라당’ 시절이던 16대 때는 오세훈 전 서울시장, 원희룡 제주지사, 정병국 전 의원 등이 원내에 진출해 남경필 전 의원 등과 함께 소장파로서 개혁적인 목소리를 냈다. 17대 때는 유승민 나경원 이혜훈 전 의원 등이 처음으로 여의도에 입성했다. 16~17대 때는 비록 야당이었지만 수권정당을 목표로 적극적인 세대교체와 인적 쇄신이 진행됐고, 전문성을 갖춘 인재들이 꾸준히 유입·육성됐던 것으로 분석된다. 정병국 전 의원은 “김 전 대통령과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총재가 문을 활짝 열어 새 인물이 수혈됐고, 이를 자산으로 정권 교체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2007년 대선 본선보다 더 치열했던 당내 경선에서 친이(친이명박)계와 친박(친박근혜)계가 맞붙은 이후 계파 갈등이 심화했다. 이명박정부 출범 후 친이계가 공천권을 행사한 18대부터 제대로 된 인재 영입과 육성은 이뤄지지 못했다. 친박계가 공천을 주도한 19~20대 때도 눈이 번쩍 뜨이는 인재영입 사례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공천이 인적 쇄신이 아닌 계파 챙기기에 방점이 찍혔기 때문으로 보인다.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세 번의 총선(18~20대)에서 계파논리에 쓸만한 사람들이 솎아지면서 보수정당 인재육성이 실패한 것”이라며 “이런 정치풍토로 소신 있는 인재들의 정계 투신도 끊기면서, 알곡은 빠지고 쭉정이만 남은 형국”이라고 진단했다.
계파 정치의 부작용은 당내 소장파 실종으로 이어졌다. 17대 당시 남·원·정(남경필·원희룡·정병국)으로 대표되던 소장파의 명맥은 18대 이후 사실상 끊어져 버렸다. 계파 줄세우기가 심화되면서 정치 신인들이 ‘소신 발언’으로 개혁성을 보여주고, 체급을 키워 대중에게 인기를 얻을 기회가 사라졌다는 분석이다.
더욱이 정치권 밖에서 높은 인지도를 쌓은 후 발탁되는 스타 정치인도 찾기 어려운 실정이다. 오 전 시장(변호사 및 방송 활동)이나 원 지사(학력고사·사법시험 수석), 홍준표(모래시계 검사) 의원 같은 사례가 더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공천 잣대로 계파 충성심이나 인맥 등이 작용하면서 이른바 눈길 끄는 인재들이 뛰어들 정치적 공간이 협소해진 탓이다.
또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 보수 정당으로서의 정체성이나 자생력을 잃어버린 정치토양도 몸값 높은 인사들이 보수정당으로 올 이유를 사라지게 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20년 전 16대 국회에 들어와 서울시장까지 지낸 오 전 시장이 또다시 후보로 거론되는 상황이야말로 그간 차세대 정치인을 안에서도 못 만들고, 밖에서도 못 데리고 온 당의 명백한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헌 기자 kmpape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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