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앞두고… ‘정치 논리’에 뒤집힌 국책사업

입력 2020-11-18 04:02
김수삼 김해신공항검증위원장이 1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김해신공항검증위원회 검증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김해신공항 기본 계획안은 확장성 등 미래 변화에 대응하기 어렵다”며 사실상 백지화를 선언했다. 대형 국책사업이 정권에 따라 정치 논리에 휘둘린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서영희 기자

20년 가까이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동남권 신공항 건설이 부지 선정 4년 만에 사실상 백지화됐다. 2년 전 지방선거에서 압승한 여권이 신공항 재검토를 주장하고 신공항 사업 검증이 다시 이뤄져 결국 사업 백지화로 결론나면서 대형 국책사업이 정치 논리에 따라 뒤집어지는 나쁜 선례를 남겼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특히 20년 가까이 끌어온 동남권 신공항 건설 계획이 다시 전면 재검토되는 등 공항 정책의 혼란이 이어지면 그 피해는 국민들이 받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무총리실 산하 김해신공항검증위원회는 17일 타당성 검증 결과 발표를 통해 “김해신공항안은 안전, 시설 운영·수요, 환경, 소음 분야에서 상당 부분 보완이 필요하고 미래 변화에 대응하기 어렵다”며 “김해신공항 추진은 근본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검증위는 “사업이 확정될 당시에 비행 절차의 보완 필요성, 유도로의 조기 설치 필요성, 미래수요 변화 대비 확장성 제한, 소음 범위 확대 등이 충분히 검토되지 않았다”며 “국제공항의 특성상 환경 변화에 대응하는 역량 면에서 매우 타이트한 기본 계획안이라는 한계가 있다”고 평가했다.

검증위가 근본적인 검토가 필요한 주된 이유로 꼽은 ‘장애물 절취’의 경우 법제처가 관련 유권해석을 내놨을 때부터 이미 김해신공항 백지화가 예고됐었다. 법제처는 ‘장애물 절취와 관련해 국토부는 해당 지방자치단체와 협의해야 한다’는 유권해석을 지난 10일 검증위에 전달했다. 공항 건설 시 인근 산을 깎아야 하는데 이를 국토부 장관 재량으로 할 수 없고 부산시와 협의하라는 것이다.

이로 인해 여당 소속 지방자치단체장들과 문재인 대통령이 과거 대선 후보 시절부터 언급해온 가덕도신공항을 추진하는 수순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 나온다. 김수삼 검증위원장은 그러나 “정부가 (기본 계획을) 충분히 보완해 (김해신공항으로) 갈 수도 있고 다른 공항으로 갈 수도 있다”며 “(검증위에서) 단 한 단어도 (가덕도에 대한) 얘기를 나눈 적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검증위 발표 직후 관계장관회의를 열고 후속조치 계획을 면밀히 마련해 동남권 신공항 추진에 차질이 없도록 할 것을 지시했다.

전문가들은 정부 산하 위원회의 이번 결정으로 국가의 미래를 위해 추진돼야 할 국책사업이 내년 4월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둔 정치권의 논리에 따라 좌우되는 사례를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신공항 재추진 과정에서 지역 간 갈등이 다시 극심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동남권 인구는 늘어날 것 같지 않은데 수요 문제를 언급하는 등 검증위의 검증 결과가 모호하다”며 “김해신공항을 백지화하고 가덕도신공항으로 가기 위한 첫 단추를 꿴 것”이라고 평가했다.

허희영 한국항공대 경영학과 교수도 “과거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의 전문성, 객관성을 능가한 검증인지 의심스럽다”며 “그동안 부산·울산·경남에서 제기했던 안전성 문제는 빼고 김해신공항 수용력 문제를 지적한 것은 원하는 결론을 정해놓고 재검토로 끌고 가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대형 국책사업은 거시적 안목을 갖고 정권을 초월해 추진돼야 하는데 정권만 바뀌면 자꾸 재검토되고 흔들리는 상황”이라며 “이런 식이 계속되면 지역주민은 물론 국가를 위해서도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고 말했다.

김영선 기자 ys8584@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