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경 길들이기?… 총재 특보, 상벌위 회부까지 거론

입력 2020-11-18 04:02
흥국생명의 ‘주포’ 김연경이 지난 11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2020-2021시즌 프로배구 V-리그 여자부 원정경기 2세트 때 GS칼텍스 센터 김유리의 공격에 가로막혀 실점하자 공을 코트로 내리치고 있다. 김연경은 이 행위로 심판으로부터 구두경고를 받았지만, 5세트에서 공격이 막히자 다시 네트를 잡아끌며 분노를 표출했다. 연합뉴스

조영호 한국배구연맹(KOVO) 총재 특별보좌역이 김연경(흥국생명) 관련 논란 이후 회의를 소집해 ‘상벌위원회에 회부해야 한다’는 의견을 낸 것으로 확인됐다. 상벌위는 통상 중죄를 범했거나 경기 중 퇴장 이상의 징계를 받은 선수의 처벌을 논의하는 기구다.

김연경은 지난 11일 GS칼텍스전 5세트 14-14 상황에서 공격이 상대 블로킹에 막히자 네트를 잡아끌었다. 강주희 심판은 김연경의 행위가 퇴장감이 아닌데다 레드카드를 줄 경우 GS칼텍스가 1점을 더 얻어 경기가 심판에 의해 종료되는 걸 우려해 제재를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경기 후 조 특보가 KOVO 경기운영본부장·실장, 심판실장 등이 참가한 회의를 열어 강 심판에 대해 제재금을 부과했다. 또 해당 경기 영상을 돌려보며 김연경을 상벌위에 올려야 한다는 의견도 냈다. 유근강 심판실장은 “스타도 자제력을 갖춰야 한다는 의견이 나와 상벌위가 논의된 건 사실이지만 김연경을 처벌할 규정이 없어 실제로 열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KOVO ‘상벌규정’ 10조와 ‘규약’ 67조는 위원회를 열어 징계하는 대상을 ‘중대한 범죄행위’에 상응하는 경우들로 열거하고 있다. 이외엔 국제배구연맹(FIVB) 규정에 따라 선수나 코칭스태프가 경기 중 ‘세트퇴장’이나 ‘경기퇴장’을 받은 경우에 한해 상벌위를 열 수 있다. 김연경의 경우 경기 후 따로 상벌위를 열도록 명문화된 규정은 없다.

이에 따라 유독 김연경에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 ‘김연경 길들이기’를 하려고 했던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KOVO 심판 A씨는 “심판 배정표를 구단에 뿌린 심판 정도의 중죄를 져야 상벌위가 열릴 수 있는 것”이라며 “구단의 불만이 임원진의 의견에 정치적 영향력을 끼치는 게 아닌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특보가 상벌에 관한 의견을 낼 권한이 있는지도 쟁점이다. A씨는 “총재를 보좌하는 역할을 하는 특보가 회의를 주최하는 것은 월권”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유 심판실장은 “(조 특보가) 배구계, 심판계 선배여서 누구보다 심판을 잘 안다”고 설명했다. 조 특보는 한국인 최초로 FIVB 국제심판이 된 뒤 통합 대한체육회 초대 사무총장까지 역임한 영향력 있는 인사다.

B구단 관계자는 “앞으로 경고 대상인 모든 선수에 대해 상벌위를 고려할 것도 아니고, 그냥 김연경이 튀니까 곱게 보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C구단의 주장 선수는 “네트를 잡아끌었다고 징계 받는 것은 본 적도 없고 문제될거리도 아닌 것 같다”며 “어떻게 보면 스타 선수들의 비애”라고 아쉬워했다.

KOVO는 징계위원회 개최에 대해 모호한 답변만 내놨다. 김영일 경기운영본부장은 “선수들이 네트를 흔드는 행위를 많이 하는데 대부분 상대방이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않을 자연스러운 감정 표출”이라면서도 “김연경건은 상황을 볼 때 자연스럽지 않았고 위협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 상벌위 논의를 할 수도 있는 것”이라고 답했다.

더불어 KOVO가 김연경 논란 이후 각 구단에 ‘과격한 행동 재발방지교육 요청’ 공문을 보낸 것도 확인됐다. 이는 모처럼 달아오른 배구의 인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과격행동’에 대한 기준도 모호할뿐더러 선수들의 플레이를 위축시킬 수 있어서다.

실제로 KOVO가 ‘과격행위’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고 ‘재발방지’만을 요구하자 최근 경기들에서 유독 세리머니에 대한 각 팀의 불만이 속출하고 있다. 누구나 ‘과격함’을 주장할 수 있는 상황이 되레 경기를 혼란에 빠뜨린 것이다. 타 종목에 비해 선수의 감정 표출에 대해 강한 잣대를 들이미는 것이 배구의 엔터테인먼트적 요소를 반감시킨다는 지적도 있다. D구단 관계자는 “요즘엔 시대가 바뀌어 선수들이 환호하고 실망하며 자유롭게 감정 표현하는 걸 팬들도 좋아한다”며 “옛날 잣대만 들이미는 건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유 심판실장은 이에 대해 “김연경은 누가 봐도 과격한 행동을 했고, ‘김연경이니 봐주냐’는 말도 나온다”며 “리그를 관리하는 입장에서 재발을 방지하고 경기를 규칙대로 운영하기 위해, ‘김연경은 되는데 왜 우린 안 돼’란 논란을 방지하기 위해 조치를 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동환 기자 hu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