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후 비핵화 협상의 관전포인트 중 하나는 북한의 핵리스트 신고일 겁니다. 북·미는 신고 문제를 놓고 맞설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바이든 행정부도 북한과의 대화에 주저해선 안 됩니다.”
위성락 전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17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조 바이든 미 대통령 당선인은 단계별 비핵화 방식은 수용하되 핵 능력 저감을 선순위에 둘 것”이라며 “이를 위해 북한에 핵리스트 신고를 강하게 요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북한이 요구하는 비핵화 방법론을 받아들이는 대신 핵 시설·무기 폐기 등 비핵화 조치를 최대한 앞당기는 전략을 구사할 것이라는 뜻이다.
다만 위 전 본부장은 “북한은 ‘공격 타깃을 제공할 수 없다’며 제출을 거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과의 확실한 신뢰가 구축돼야 핵 물질·시설·무기 등을 신고할 수 있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하면서 비핵화를 후순위로 미룰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위 전 본부장은 “과거 북한은 핵물질을 신고한 적은 있어도 핵무기를 신고한 경우는 없다”며 양측이 공방을 이어갈 것으로 내다봤다.
위 전 본부장은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 발사 등 무력도발을 감행할 경우 비핵화 협상은 시작 전부터 난항에 빠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북한은 그간 친분을 쌓아온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을 위해 무력시위를 최대한 자제해 왔다”며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패배로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김정은 국무위원장으로서는 새 행정부와의 비핵화 협상에서 주도권을 쥐겠다는 생각에 무력도발 카드를 꺼내들 확률이 상당히 높다”고 덧붙였다.
북한은 10월 노동당 창건 75주년 열병식에서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전격 공개하며 언제든 시험발사에 나설 수 있음을 시사했다. 위 전 본부장은 “과거 미 행정부 출범기마다 해온 것처럼 전략도발을 감행할 경우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에 대해 회의적인 미국 내 시각에 힘만 보탤 것”이라고 말했다.
위 전 본부장은 향후 비핵화 협상을 성공적으로 진행하려면 우리 정부 역할이 다시 중요해질 것으로 전망했다. 신고 문제로 줄다리기하는 북·미에 유연성을 촉구하는 한편 북한의 무력도발 역시 막아야 하는 역할을 우리 정부가 맡게 됐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 외교안보라인이 그 어느 때보다 기민하게 움직이며 북·미 양측과 소통해야 할 때”라고 당부했다.
위 전 본부장은 바이든 행정부도 비핵화 협상에 앞서 북한과 대화를 갖는 데 주저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비핵화 협상이 30년 넘게 이어지는 것은 북한은 물론 미국도 여러 실수를 저질렀기 때문”이라며 “대화를 할수록 서로 간의 오해는 줄어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위 전 본부장은 2009년 3월부터 2년6개월간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을 역임하며 북핵 문제를 진두지휘한 대표적 ‘북핵통’이다. 이후에는 주러시아대사를 지냈다.
손재호 기자 sayho@kmib.co.kr
[바이든시대, 전직 고위당국자에게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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