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 공자 왈, 오지랖 금지

입력 2020-11-18 04:06

사람이 혼자 산다면 마음대로 살아도 되지만, 여러 사람이 함께 사는 사회에서는 그럴 수 없다. 서로 다른 삶의 방식이 빚어내는 갈등을 피하려면 원칙이 필요하다. 공자는 그 원칙을 ‘인(仁)’이라고 했다. 사람(人) 둘(二)이 함께 살아가기 위한 원칙이다. ‘인’의 해석은 실로 다양하지만, 공자가 제 입으로 말한 가장 확실한 해석은 ‘논어’에 보인다.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 勿施於人)”. 내가 싫으면 남에게 하지 말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 죽기 싫으면 죽이지 말고, 맞기 싫으면 때리지 말고, 빼앗기기 싫으면 빼앗지 말라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이 함께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원칙이다.

맞는 말이긴 한데, 이걸로 충분할지 의심스럽다. 사람들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려면 좀더 적극적이어야 하지 않을까. 이를테면 “내가 좋아하면 남에게 해 줘라” 같은 태도가 필요하지 않을까. 어째서 공자는 좋아하는 것을 ‘해 줘라’ 하지 않고, 싫어하는 것을 ‘하지 마라’고 했을까. 세상의 많은 문제들은 내가 좋아하면 남도 좋아할 거라는 착각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사람 마음은 전부 다르다. 내가 좋아하는 것과 남이 좋아하는 것이 같을 수 없고, 내가 싫어하는 것과 남이 싫어하는 것 역시 같을 수 없다. 내가 고기를 좋아한다고 채식주의자의 숟가락에 고기 반찬을 얹어주면 그는 좋아할까? 쓸데없는 오지랖이다. 오지랖에서 그치면 다행이다. 내가 음담패설과 스킨십을 좋아하니 상대방도 좋아할 거라는 착각이 성희롱을 낳는다. 남이 싫어할 줄 알면서 저지르는 잘못이나 모르고 저지르는 잘못이나 똑같은 잘못이다. 호의에서 나온 행동이라도 상대는 결코 호의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따라서 가급적 남의 일에 개입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최소한 상대방 의사에 반하는 행동은 저지르지 않아야 한다.

남의 개입을 은근히 기대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고기를 좋아한다면 누군가 내 숟가락에 고기 반찬을 얹어주길 바랄 테고,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면 상대방 손길을 원하는 게 자연스럽다. 그 기대를 저버리면 눈치가 없다거나 배려가 부족하다고 불평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고기 먹기를 강요받는 채식주의자의 불쾌함, 원치 않는 신체적 접촉을 시도하는 폭력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불필요한 개입은 갈등을 부추긴다. 그러니 갈등을 피하기 위해서는 ‘해주는 것’보다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서로를 챙겨주는 따뜻한 세상보다 남의 인생에 개입하지 않는 차가운 세상을 바라는 사람이 늘고 있다. 함께 살면서도 따로 사는 것처럼 살기를 바란다. 가족의 오지랖조차 달가워하지 않는 세상이다. 남의 오지랖은 당연히 반기지 않는다. 간절히 도움을 요청한다면 모를까, 당사자 의사를 무시한 오지랖은 득보다 실이 크다.

그래도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서는 내 일이 아니라도 오지랖을 떨어야 하지 않을까. 한 가지 기억할 것이 있다. 사회적 약자는 남의 호의와 배려에 기대어 살아야 하는 불쌍한 존재가 아니다. 그들은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갈 권리가 있고, 사회는 그들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누군가의 도움이 아니다. 자신의 권리이며 사회의 의무다. 인간이 사회를 이루어 함께 살아가는 이유는 남에게 기대기 위해서가 아니다. 동등한 존재로서 협력하며 공생하기 위해서다.

우리 사회의 문제는 대체로 두 가지에서 비롯된다. 나는 당하기 싫지만 너는 당해도 싸다는 내로남불, 그리고 내가 좋아하니 너도 좋아할 거라는 오지랖이다. 내로남불이 잘못인 줄은 알아도 오지랖이 잘못인 줄은 모른다. 둘 다 ‘내가 싫으면 남에게 하지 마라’는 원칙에 어긋나기는 마찬가지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원칙이다.

장유승 (단국대 연구교수·동양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