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책을 읽지 않는 아이였다. 부모님께서 어린 나에게 독서하는 습관을 만들어주려고 노력하셨지만 절대 책에 손대지 않는 아이였다. 인형을 가지고 놀거나 놀이터에 나가서 친구들과 놀기 바쁜 아이였다. 그렇게 고등학생 때까지 책과 거리가 먼 아이였다. 그런데 스무 살이 되면서부터 자발적으로 도서관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최근 프로게이머 친구를 사귀게 됐다. 직업상 매일 게임만 하는 친구인데 우연히 그의 집에 초대받아서 갔다가 놀라고 말았다. 도서관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책이 많이 있었다. 프로게이머라고 해서 책을 좋아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내가 부끄러웠다. 친구는 매일 잠들기 전에 책을 읽는다고 했다. 책을 읽는 습관이 언제부터 생긴 것이냐고 내가 물었더니, 군대에서 만난 후임이 매일 책을 읽길래 따라 읽다가 자연스레 책의 매력에 빠졌고 서른 살이 넘은 지금까지도 꾸준히 책을 읽는 중이라고 했다.
처음엔 나도 곁에 있는 사람을 따라 하다가 읽게 됐다. 사업을 하시느라 늘 바쁘셨던 어머니께서 어느 날 갑자기 사업을 접으시고는 매일 도서관에 가셨다. 어머니를 따라간 도서관에서 어린 나는 너무 괴로웠다. 지루하고 답답해서 빨리 집으로 돌아가자고 떼를 쓰기도 했다. 이런 나의 투정에도 흐트러짐 없이 책을 읽으시는 어머니를 보면서 어느 순간부터 나도 조금씩 책을 따라 읽게 됐다. 처음에는 표지만 예쁜 책을 읽다가 나중에는 나만의 취향이 생겨서 책 읽기에 탄력이 붙었다. 그때의 탄력이 지금까지도 잘 유지되는 중이다. 순전히 거울 효과로만 이뤄진 프로게이머와 나의 결실인 것이다.
나도 언젠가 자녀를 갖게 된다면 책을 읽으라고 무조건 강요하지 않고 내가 읽는 모습을 보여줄 생각이다. 내가 먼저 책 읽는 모습을 보여주면 전염병에 걸린 듯이 주변 사람들도 책을 읽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독서’라는 아름다운 전염병이 널리 퍼져 모두가 책을 읽는 날이 오면 좋겠다.
이원하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