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기고 고장 내고’ 킥보드 얌체족에 충전기사들 울상

입력 2020-11-17 00:05
공유 전동킥보드가 늘어나면서 킥보드를 방치하거나 훼손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서강대교 위에 킥보드 여러 대가 놓여 있는 모습. 황윤태 기자

“이봐요, 건물에 어떻게 들어왔는지 묻잖아요!” “죄송합니다, 킥보드만 찾아서 바로 나갈게요.”

지난 13일 늦은 밤 서울 송파구의 한 오피스텔에서는 때아닌 추격전이 펼쳐졌다. 주민만 출입할 수 있는 지하 2층 주차장에서 한 경비원이 공유 전동킥보드를 충전하기 위해 몰래 들어온 프리랜서 충전기사를 쫓아가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공유 전동킥보드는 다음 이용자 및 충전기사를 위해 건물 입구 등 접근 가능한 곳에 주차해야 하는데, 몰지각한 이용자가 출입이 통제되는 오피스텔 지하주차장에 세워 놓았기 때문이다.

경비원을 피해 전동킥보드를 찾던 충전기사는 택배 보관함 앞에 놓인 ‘목표물’을 발견하자 서둘러 자신이 타고 온 전동킥보드 위에 얹고 쏜살같이 사라졌다. 충전기사가 소속된 회사는 ‘사유지에 함부로 들어가지 말라’고 교육하고 있지만 충전 건수에 따라 수입이 결정되기 때문에 이를 다 지키며 일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공유 전동킥보드 한 대가 지난 13일 서울 송파구의 한 오피스텔 앞에 방치돼 있다. 황윤태 기자

공유 전동킥보드로 대표되는 개인형 이동수단(PM) 대여업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이용자들의 의식과 관련 법·제도는 아직 기술의 발전을 따라가지 못하는 모양새다. 다음에 편히 쓰려고 공유 전동킥보드를 자신의 주거지 인근에 숨겨 놓은 이용자도 있었고, 자신이 훼손한 전동킥보드를 길에 방치한 사람도 있었다. ‘언제, 어디서든 반납할 수 있다’는 공유 전동킥보드 시스템의 장점을 악용하는 것이다.

국민일보가 15~16일 공유 전동킥보드 애플리케이션 여러 개를 동시에 활용해 공유 전동킥보드를 찾아보았더니, 기상천외한 곳에 주차된 경우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앱에 표시된 GPS(위치정보확인시스템) 정보에는 분명 건물 한가운데 놓여 있는 것으로 돼 있는데, 막상 주민 외에는 출입할 수 없는 지하주차장이나 분리수거장 등에 방치된 사례가 적지 않은 것이다.

서울의 한 오피스텔에서 일하는 경비원 김모(69)씨는 “숨어 있는 전동킥보드를 가져가겠다며 하루에도 2~3번씩 충전 트럭이 진입한다”며 “막상 들어와도 전동킥보드를 찾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려 난감할 때가 많다”고 전했다. 송파구 석촌호수 한복판에서 공유 전동킥보드 GPS 신호가 잡히거나 단독주택 마당에 세워놓은 경우도 있다. 개울에 빠져 있는 공유 전동킥보드도 있었다.

거리에 방치된 공유 전동킥보드 역시 애물단지다. 취재 기간 지하철역과 대로변에서 아무렇게나 주차된 전동킥보드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지난 15일 서울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인근에서 만난 환경미화원 A씨는 “요즘처럼 낙엽이 많이 쌓일 때는 불규칙하게 주차된 전동킥보드를 치우면서 일하는 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라며 “한 대에 20㎏이 넘는 전동킥보드를 10대 정도 옮기고 나면 팔이 뻐근할 정도”라고 토로했다.

브레이크 스노클이 훼손된 킥보드의 모습.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이용자들이 고장 난 공유 전동킥보드를 방치하는 일도 흔해 보였다. 이틀간 30여대의 공유 전동킥보드를 확인해 보니 핸들에 장착된 경적이 고장 나거나 없어진 경우가 가장 흔했다. 심지어 브레이크가 파손돼 안전이 심각하게 우려되는 것도 있었다. 배터리가 충분히 남아 있었다면 사용자가 브레이크 파손 여부를 인지하지 못한 채 도로에 나섰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 공유 전동킥보드 업체 관계자는 “사용 전 반드시 브레이크를 점검하라고 앱을 통해 공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공유 전동킥보드를 운행하기 위해 찍어야 하는 QR코드가 훼손된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프리랜서 충전기사는 “탑승할 때 찍어야 하는 QR코드에 네임펜으로 낙서를 하거나 담뱃불로 훼손한 경우도 봤다”고 말했다.

지방자치단체마다 관련 법과 제도를 해석해 PM 관련 정책을 펴고 있는 것도 갈등 요소다. 서울시는 지난 11일 ‘보행 안전 개선 종합계획’을 발표해 가로수, 전봇대, 자전거 거치대 옆 등 12곳에 공유 전동킥보드를 주차할 수 있도록 했다.

반면 인천 계양구는 지난 9월부터 공유 전동킥보드를 단속해 수거하고 있다. 이 때문에 단속 현장에서 공무원과 이용자, 충전기사 간 말다툼이 벌어지기도 한다. 계양구 관계자는 이날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최근 관내에서 공유 전동킥보드 사망사고가 발생해 관련 직원들의 신경이 곤두서 있다”면서 “도로교통법에 근거해 수거한 공유 전동킥보드는 업체가 과태료를 지불하면 되돌려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공유 전동킥보드를 충전해 다시 되돌려 놓는 충전기사가 새로운 부업으로 떠오르면서 기사 간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는 것도 PM 확산에 따른 새로운 현상이다. 방전된 공유 전동킥보드를 충전해 지정된 장소(허브)에 옮겨 놓으면 대당 4000~5000원의 수익이 발생하는데, 이를 위해 짧은 시간에 최대한 많은 ‘방전 킥보드’를 확보하기 위한 경쟁이 벌어지는 것이다.

인천에서 퇴근 후 충전기사로 일하는 김모(28)씨는 “개인 사무실 같은 곳에 방전된 전동킥보드를 모아 놓거나 ‘충전 예약’을 걸어놓은 전동킥보드를 채가는 충전기사가 일부 있어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며 “요즘은 1층 빈 상가를 빌려 많게는 150대를 한 번에 충전하는 전문적인 ‘충전소’도 생겼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토교통부는 아직 공유 전동킥보드의 등록 대수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공유 전동킥보드 대여업체를 체계적으로 관리할 만한 법률이 없기 때문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법률적 근거가 없는 업종이라 이들에게 강제할 의무사항도 따로 규정된 것이 없다”며 “PM대여업 관련 법제도 정비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PM 대여업계는 전국에 약 5만여대가 운영 중이며, 이 가운데 약 3만대가량이 서울에 배치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황윤태 기자 trul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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