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 후보 추천위원 가운데 일부가 지난 13일 2차 회의에서 여야를 제외한 법원행정처장과 대한변호사협회장 추천 인사 4명 중에서 공수처장 후보 2인을 압축하자고 제안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야당 측 추천위원들은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며 반발한 것으로 전해졌다. 구체적으로는 ‘후보자를 직접 출석시켜야 한다’거나 ‘전관예우 여부 파악을 위해 사건 수임내역을 내라’는 등의 요구조건을 내걸었다고 한다. 법조계에서는 앞선 회의가 수확 없이 끝난 데 이어 오는 18일 3차 회의에서도 여야가 평행선을 달릴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16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A추천위원은 지난 13일 국회에서 열린 공수처장 추천위 2차 회의에서 ‘법원행정처장과 변협회장이 추천한 인사들이 그래도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에서 오해를 덜 받을 것 같다. 이들을 중심으로 후보군을 압축하는 게 어떻겠냐’는 취지로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치적 중립성이나 편향성 시비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후보군을 먼저 추려낸 뒤 효율적으로 논의를 진행하자는 취지였다.
앞서 조재연 법원행정처장은 검사 출신의 최운식 변호사를, 이찬희 변협회장은 김진욱 헌법재판소 선임연구관과 이건리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 한명관 변호사를 추천했다. A위원 말대로 논의가 진행될 경우 이들 4명 중 최종 후보 2명만 가려내면 되는 상황이었다. 회의 내내 말을 아끼던 A위원은 오후 회의 중 여야 측 추천 후보는 배제하자는 의견을 냈다고 한다.
야당 측 추천위원들은 거세게 반발했고 격론으로 이어졌다. 일부 위원은 후보자들을 불러 직접 질의응답을 해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10명의 후보가 제출한 병역·재산내역 등 기본적인 인사자료만으론 부실 검증이 될 수밖에 없다는 의견도 이어졌다.
이날 회의에선 후보들의 전관예우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개업 후 3년간의 사건수임 내역을 확인하는 절차까지 있었다고 한다. 후보에게 전화를 건 뒤 스피커폰으로 위원들이 질의하고 응답을 듣는 시간도 있었다. 그러나 야당 측 위원들은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고수했고, 후보군 압축 논의를 하지 못한 채 추가 회의를 열게 됐다.
여야에 비해 중립적 입장인 조재연 법원행정처장과 이찬희 변협회장은 후보군을 어느 정도 추려놓고 논의를 신속히 진행하자는 입장을 냈다고 한다. 일부 위원은 “대법관이나 헌법재판관을 추천할 때도 이렇게는 하지 않는다”고 반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후보자 질의응답 등 세부 검증은 청와대나 국회에서 할 일이란 취지였다.
야당 측 추천위원인 이헌 변호사는 이날 “지난 13일 회의는 신속론과 신중론의 격론이 있었고, 고의적인 지연술이라 볼 여지는 없다”는 입장문을 냈다. 그러면서 “졸속과 밀실, 깜깜이 심사를 단호히 거부한다는 취지의 신중론”이라며 “국회 실무지원단을 통해 심사대상자들에 대한 급여 등 수입자료와 사건수임 내역, 언론 보도 내용 등에 대한 추가 서면 질의 및 요청 사항을 보냈다”고 밝혔다.
법조계에서는 18일 열리는 3차 회의에서도 논의가 진전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야당 측 위원들은 가능한 한 시간을 길게 끄는 전략으로 보인다”며 “공수처가 조속히 안착되기 위해서라도 여야 양측의 시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후보가 초대 공수처장이 되는 게 맞는다”고 말했다.
허경구, 구승은, 구자창 기자 ni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