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 사건에 있어 ‘피해자다움’을 인정하지 않은 대법원의 16일 판결은 사회적 통념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는 피해자 중심주의를 재확인한 조치로 진일보한 결정이다. 대법원 3부는 편의점 업주에게 입을 맞추는 등 신체를 접촉해 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된 편의점 본사 개발부 직원 A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하급심으로 돌려보냈다.
A씨는 강제로 볼에 입을 맞추는 등 홀로 근무하는 편의점 업주를 추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 재판은 A씨의 유죄를 인정, 벌금 400만원을 선고했으나 항소심은 무죄를 선고했다. 피해자가 A씨의 손길을 거부하면서도 종종 웃었다는 게 무죄 선고의 주된 이유다. 한마디로 피해자가 피해자답지 않게 행동했다는 거다. 항소심은 피해자인 편의점 업주가 업무상 갑의 지위에 있는 A씨의 추행을 거부하기 어려웠을 거라는 점을 간과했다.
과거에 비해 상황은 나아졌다. 그러나 아직도 검찰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성범죄 피해자에게 사건과 관계 없는 피해자의 나이, 외모, 성적 지향 등을 이유로 피해자의 진술을 의심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강하게 저항하지 않았다고, 늦게 신고했다고 피해자 진술을 배척하기 일쑤다. 이렇게 피해자가 2차 피해에 시달리는 사이 가해자는 솜방망이 처벌을 받거나 법망을 빠져나간 게 지금까지의 불편한 진실이었다. 사안의 성격상 증거를 확보하기 쉽지 않은 데도 그동안 수사와 재판이 가해자 중심으로 진행되다 보니 신고해도 소용없다는 인식이 팽배했다. 성폭력 신고율이 2%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통계가 그 방증이다.
사회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상대가 동의하지 않는 신체 접촉은 범죄다. 소극적 부정은 긍정이라는 인식은 일방의 생각이자 이제는 없어져야 할 구시대적 사고다. 시대 흐름에 맞게 검찰 수사나 법원 판결도 변해야 한다.
[사설] ‘피해자다움’ 인정 않은 大法의 진일보한 판결
입력 2020-11-17 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