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 사라지는 이름, 중산층

입력 2020-11-17 04:03

중산층은 ‘경제 수준이나 사회문화적 수준이 중간 정도이면서 스스로 중산층 의식이 있는 집단’이다. 나라 경제의 허리를 형성하는 계층이자 국민경제활동의 지표다. 보통 소득을 잣대로 중위소득(전 국민을 소득순으로 줄을 세웠을 때 딱 중간에 있는 소득)의 50~150%에 해당하는 가구(경제협력개발기구 기준)를 중산층으로 본다. 올해 기준 중위소득은 4인 가구의 경우 월 475만원가량이다.

중산층은 그 사회와 경제가 얼마나 건강한지 보여주는 척도이기도 하다. 이번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는 ‘중산층 복원’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다. 바이든은 스스로를 ‘중산층 조(middle class Joe)’라고 부른다. 그는 펜실베이니아의 가난한 노동자 가정(중고차 영업사원 아버지, 전업주부 어머니)에서 나고 자랐다. “바이든이라는 성을 가진 사람 중에 대학을 간 건 처음이 아닐까”라고 말할 정도의 형편이었지만 성공 역사를 만들었다.

미국은 이런 ‘중산층 신화’가 빈번한 나라였다. 식료품점을 운영한 외조부모 밑에서 자랐던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서부의 농가에 입양돼 성장한 스티브 잡스 등이 모두 그렇다. 그런 미국에서 중산층이 사라지고 있다. 대니얼 마코비츠의 책 ‘엘리트 세습’에 따르면 1964년 중위소득은 5분위 가구(소득을 기준으로 전체 가구를 5개 그룹으로 나눴을 때 가장 아래에 있는 가구)의 평균소득보다 4배가량 높았다. 이 수치는 50년 뒤 3배로 줄었다. 대신 같은 기간에 상위 1%의 평균소득은 중위소득 대비 13배에서 23배로 늘었다.

위기 신호는 한국에서도 감지된다. 한국의 중산층 비율은 1990년 75.4%에서 2005년 69.2%, 2015년 67.9%, 올해 2분기 58.3%까지 낮아졌다. 부의 대물림은 물론 교육을 이용한 교육 권력·학벌의 세습이 거세지고 있다. 저금리에 따른 자산 거품, 기울어진 운동장 같은 교육 경쟁, 기술 발전이 부른 일자리 감소 등은 중산층의 몰락을 부추긴다.

중산층이라고 부를 만한 이들은 자신을 중산층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자녀세대는 자기보다 못할 거라 생각한다. 중학교 졸업이 학력 전부인 부모 밑에서 자란 70년대생 K는 서울의 명문사립대를 나왔다. 그는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법한 대기업에서 부장으로 일하면서 적잖은 연봉을 받고 있다. 집을 장만하느라 진 빚을 아직 갚고 있지만, ‘인 서울 아파트’ 한 채를 손에 쥐었다. 아들 둘 학원비에 허리가 휠 정도라고 하지만, 적당히 성공한 인생이지 않을까. 이 질문에 그는 단호했다. “돈이 공부를 하는 세상인데, 우리 아이들은 교육 경쟁에서 이미 뒤처져 있다. 아빠·엄마찬스는 기대조차 못 한다. 난 ‘계급 사다리’의 아랫단에서 더는 올라가지 못하고 붙들려 있다.”

중견기업에서 일하는 80년대 후반생 J는 대학을 나온 부모 슬하에서 유복하게 자랐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현재 경제·사회적 지위를 부모보다 낮다고 본다. 언제 자기 이름으로 된 집을 장만할 수 있을지 기약 없다고 말한다. 치솟는 부동산 가격, 끝없는 저금리 상황을 보면서 자산이라고 부를 만한 돈을 모을지 모르겠다고 한다. 언제까지 근로소득을 거둘지, 노후대비가 가능할지, 미래라는 게 있는지…. 모든 게 불확실하다는 J는 “한국 사회는 모 아니면 도다. 중산층이라는 단어는 허상”이라고 단언했다.

중산층의 다른 이름은 어쩌면 ‘가능성’일지 모른다. 중산층이 사라진다는 건, 계층을 오가는 사다리가 무너지고 계급이 고착되면서 그 사회가 고인물이 됐음을 웅변한다. 중산층 복원이든, 소득주도성장이든 물은 흘러야 한다. 부동산, 교육 등에서 불거지는 불공정, 불평등의 문제는 물이 고여서 생긴다.

김찬희 디지털뉴스센터장 c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