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열린 아세안 관련 정상회의에서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를 향해 한·일 관계 개선 의지를 적극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최근 박지원 국가정보원장과 여야 의원들의 방일도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정작 스가 총리는 우리의 관계 개선 의지에 대해 ‘한국이 해법을 가지고 오라’는 입장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14일 화상으로 진행된 제15차 동아시아정상회의(EAS)에서 2021년 도쿄올림픽,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방역·안전 올림픽’으로 치러내자고 했다. 문 대통령은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이 성공적인 평화 올림픽이 되었던 것처럼 회원국들의 신뢰와 협력으로 동북아 릴레이 올림픽이 방역·안전 올림픽으로 성공적으로 개최된다면 인류는 코로나 극복과 평화에 대한 희망을 더욱 키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도쿄올림픽을 통해 남북뿐 아니라 한·일 대화를 진전시키자는 구상의 하나로 해석된다. 문 대통령은 최근 노태강 주스위스대사에게 임명장을 주면서도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의 인연을 살려 도쿄올림픽 남북 동반 입장, 2032년 남북 올림픽 공동개최 등을 잘 협의해 달라고 당부한 바 있다. 2018년 평창올림픽이 남북, 북·미 대화의 문을 연 결정적 계기가 된 만큼 내년 도쿄올림픽에서도 평창올림픽과 같은 외교적 효과를 기대하는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같은 날 열린 아세안+3(한·중·일) 정상회의에서도 “각국 정상 여러분, 특히 일본의 스가 총리님 반갑다”고 말했다. 다자 정상회의에서 의장국 정상이 아닌 특정 국가 정상을 지칭해 인사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15일 “문 대통령만 스가 총리를 환영한다고 한 게 아니다. 다른 나라 정상들도 (스가 총리가) 처음 다자무대에 선을 보이는 자리였던 만큼 같이 인사했다”며 “전체적으로 우호적이었다”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이 최근 적극적으로 일본에 손을 내민 것은 우선 한국이 의장국인 한·중·일 정상회의가 다음 달로 다가왔기 때문으로 보인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 출범에 맞춰 한·일 관계를 회복시켜 미국과 보조를 맞추려는 행보로 해석된다. 바이든 당선인은 최근 한·일 정상과 각각 통화하면서 일본을 ‘인도·태평양 지역 주춧돌(cornerstone)’로, 한국을 ‘인도·태평양 지역 중심축(linchpin)’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고위 당국자, 여야 의원들의 릴레이 방일도 계속되지만 일본 반응은 뜨뜻미지근하다. 스가 총리는 한일의원연맹 회장인 김진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방한 요청에 “조건이 갖춰져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는 2018년 10월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이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과 배치된다며 한국 정부가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삼권분립’에 따라 대법원 판결을 존중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어 양국이 2년여간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임성수 기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