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과 약은 독하고 속을 버린다는데…” “피부과 약을 먹으면 실제로 간과 콩팥이 나빠지나요?”
인터넷에 ‘피부과 약’을 검색하면 흔히 찾을 수 있는 질문들이다. 한 피부과 전문의도 “진료하다 보면 하루에도 수십 번씩 환자들한테서 듣는 말”이라고 했다. 물론 대부분 의학적 근거가 없지만 워낙 오래 전부터 잘못 알려진 이야기라 아무리 그렇지 않다고 설명해도 환자들이 쉬 믿으려 하지 않는다는 게 그의 하소연이다. 피부과 약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 꽤 오랫동안 고착화돼 있음을 보여준다.
이에 대한피부과학회와 피부과의사회가 함께 ‘피부과 약 바로알기-편견 타파’ 캠페인을 최근 시작했다. 공식 유튜브 채널(KDA TV)도 오픈해 피부과 약과 각종 피부질환에 대한 정확한 정보 공유에 나섰다.
두 단체는 앞서 지난 9~10월 피부과 약 복용 경험이 있는 10~60대 900명을 대상으로 국민 인식도 조사를 벌였다. 그 결과 응답자 10명 가운데 8명 정도(79%)가 ‘피부과 약은 독하다’는 말을 들어본 적 있다고 답했고 56.1%가 동의했다. 그런 말을 들어본 적 있다고 답한 711명에게 듣게 된 경로를 묻자 49.2%는 가족이나 친구의 경험, 36%는 뚜렷한 경험이나 경로는 없지만 일반적인 통념으로, 14.8%는 인터넷, 언론매체를 통해서라고 답했다. 피부과 약에 대한 부작용을 직접 경험했다기보다는 일반 통념이나 간접적으로 전해들은 정도라는 얘기다.
한태영 서울 노원을지대병원 피부과 교수는 16일 “피부과 약이 독하다는 인식이 생기게 된 것은 명확하지는 않으나 과거 ‘나병’으로 불리던 한센병을 피부과에서 치료했던 것과 관련 있다”면서 “전염성 높고 피부와 신경을 침범해 얼굴 형상이 변하고 감각이 소실되는 나병은 무서운 병으로 알려졌고 원인인 ‘나균’을 치료하는 피부과 약은 매우 독할 것이라는 인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고 설명했다. 또 과거 두피의 곰팡이 감염이나 발톱 무좀 치료제로 사용됐던 항진균제가 광과민증(햇빛에 민감해짐), 간 손상을 일으키는 경우가 있었던 것도 영향을 줬다. 한 교수는 “하지만 지금 쓰이는 항진균제는 안전하고 부작용이 적은 약으로 대체됐다”고 덧붙였다.
응답자 4명 가운데 1명(25.9%)은 피부과 전문의가 약을 처방했음에도 복용 거부나 중단한 경험이 있었다. 그들(233명)은 거부 또는 중단 이유(중복 응답)에 대해 54.1%는 ‘장기 복용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44.6%는 ‘부작용이 걱정돼서’라고 답했다. 피부과 약에 대한 선입견과 부정적 인식이 여전하다는 얘기다.
피부질환 중에는 급성 두드러기처럼 수일 내 빠르게 호전되는 것도 있지만 만성 두드러기, 아토피피부염, 건선처럼 장기적인 약 복용과 피부 관리가 필요한 난치성도 있다. 재발과 호전을 반복하며 만성화되는 이들 질환은 꾸준한 병원 방문과 약 복용을 해야 2차 합병증을 막을 수 있다.
대한피부과학회 박천욱(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교수) 회장은 “피부 질환을 단순 경증 질환으로만 치부하거나 피부과 약의 장기 복용에 대한 부담감으로 약 복용을 거부하거나 중단해선 안된다. 피부과 전문의 처방에 따른 바른 약 복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조사 대상자 900명 가운데 부작용을 겪었다는 응답자는 14.3%(129명)에 그쳤다. 부작용 경험 비율이 높지 않음에도 상당수는 일반 통념과 간접 경험으로 편견을 갖게 된 것이다. 지난해 국립의료원 지역의약품안전센터에 보고된 약물 부작용 4301건 가운데 피부과 약에 의한 것은 약 1%(43건)에 불과했다.
피부과 약에 대한 오해는 피부과 전문의로부터 정확한 처방과 올바른 정보가 부족한 데서 비롯됐다는 게 학회 측 입장이다. 이번 설문에서 응답자의 약 81%는 피부과 전문의 의원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으로 조사됐다(그래픽 참조).
의료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전문의 자격을 가진 의사가 진료하는 의원은 간판에 ‘상호명+전문과목+의원’ 표시를 할 수 있다. 반면 일반의(의대 졸업 후 의사면허만 취득)가 운영하는 기관은 상호명과 의원을 동일한 크기로 표기하고 반드시 2분의 1 글자 크기로 ‘진료과목’을 따로 표기해야 한다. 예를 들어 ‘○○피부과의원’이라면 전문의가, ‘○○의원 진료과목 피부과’라면 일반의가 진료하는 곳이다.
이상준 대한피부과의사회 회장은 “문제는 비피부과 전문의나 일반의 의원이 진료과목을 잘 보이지 않도록 작게 내지는 눈에 잘 띄지 않는 색깔로 표기하거나 해당 부분의 조명을 꺼 놓는 등의 눈 속임으로 환자들에게 혼선을 주고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피부과의사회는 환자들의 전문의 여부 확인을 돕기 위해 웹사이트(www.akd.or.kr)에서 피부과전문의 검색 서비스를 운영 중이다. 또 병원 입구에 의사회가 인증한 피부과전문의 마크를 걸도록 하고 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