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가을 ‘서울대학교 인권헌장’ 제정에 대한 찬반 논의가 뜨겁다. 서울대 인권규범 제정 시도는 2012년 대학원생의 열악한 근무환경과 인권침해 사실이 밝혀지면서 시작됐다. 2016년 가을 서울대총학생회와 인권센터가 주도해 ‘서울대 인권 가이드라인’을 제정하려 했으나 거센 반대로 무산됐다.
국가공동체의 관심사인 인권 보호를 대학에서 시행하려는 인권헌장에 어떤 문제점이 있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좋은 의도가 반드시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서울대 인권헌장에는 매력적으로 보이지만, 오히려 구성원의 자유를 침해하는 위험요소가 들어있다.
첫째, “서울대학교 구성원은…자신의 언행이 차별을 조장하지 않도록 주의할 의무를 지닌다”라고 규정한 차별표현 금지조항(제3조 제2항)은 학문공동체인 대학 규범으로 타당하지 않다. 학문의 장인 대학에서 이뤄지는 학술적 토론과 비판 과정에서 차별적 언사가 자연스럽게 나타날 수 있다. 이 조항은 차별적 언사가 포함된 학문적 토론을 차별·혐오 표현으로 간주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인권을 침해하는 차별·혐오 표현의 금지가 인간 존엄성의 보장을 위해 긴요하다고 해도, 학문의 전당인 대학교에서 차별표현이라는 이유로 이를 금지하는 것은 불합리하며 타당하지 않다.
둘째, “서울대학교 구성원은 신체적·정신적 손상을 야기할 수 있는 모든 형태의 폭력과 괴롭힘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를 가진다”라고 규정한 제9조 제1항의 ‘폭력과 괴롭힘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는 매우 막연한 개념이다. 인권헌장 제정을 주장하는 보고서에 따르면, 이 조항의 폭력은 물리적 폭력뿐 아니라 폭언 등 다양한 형태의 폭력을 포함한다. 여기서 괴롭힘은 경범죄 처벌법의 ‘지속적 괴롭힘’, 근로기준법의 ‘직장 내 괴롭힘’보다 넓은 개념이다. 심지어 지난 6월 29일 제출된 차별금지법안의 괴롭힘보다 더 포괄적이다. 그래서 괴롭힘으로 인정되는 행위 유형이 매우 다양하다. 예컨대 동성애자에게 동성애의 의학적 문제점을 얘기하거나 다른 종교를 가진 자에게 전도하면서 개종을 권할 때 상대방이 모욕감 또는 두려움을 느끼는 등 정신적 고통을 겪었다고 주장하는 경우, 이는 괴롭힘에 해당한다. 심지어 잠깐 대화하며 받은 괴롭힘도 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그 결과, 피해자로 자처하는 자들이 더욱 큰 목소리를 내며 사상·종교·학문의 자유가 심각하게 위축되거나 침묵이 강요되는 상황이 나타날 것이다. 이같이 불명확한 개념인 폭력이나 괴롭힘은 그 자체로서 법치주의의 요청인 명확성 원칙에 위반된다.
셋째, 성적지향과 성별 정체성이 인권운동가의 선언문이 아닌, 강제수단을 지닌 법규범에 차별금지 사유로 명시되는 것은 절대로 타당하지 않다. 역사적으로 차별의 극복은 과거 해악에 대한 반성의 산물이었다. 각국의 차별금지 사유가 다른 것은 차별의 역사적 배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남녀차별, 신분 차별, 종교차별, 인종차별, 이주민과 원주민의 차별 등이 그와 같은 역사적 사실이다. 따라서 이런 배경과 요청이 없는 사항을 법규범에 차별금지 사유로 정하고, 이에 기인한 차별행위에 제재를 가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성적지향을 이유로 차별했던 역사를 가진 외국과 달리, 한국의 역사적 배경과 현재 상황을 고려할 때, 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이 과연 성별, 종교, 사회적 신분 등과 같이 법규범에 차별금지 사유로 수용돼야 할 것인지, 나아가 이에 따른 차별행위가 법적 제재의 대상이 돼야 하는지는 여전히 논란거리다.
또한, 법규범에서 널리 승인된 차별금지 사유(성별, 종교, 사회적 신분, 나이, 장애 등)는 개인이 선택할 수 없는 ‘주어진 것’이거나, 내면의 자아와 동일시할 정도로 개인의 정체성과 매우 긴밀히 관련된 것이다. 즉, 개인의 책임으로 돌릴 수 없는 사유이거나, 다른 선택을 요구할 수 없는 사유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사유로 차별하는 것은 개인의 책임능력 범위를 벗어나는 까닭에 부당하다. 만약 성적 지향이 선택의 여지가 없는 선천적인 것이라면, 선악의 도덕적 판단을 내리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그러나 오늘날 동성애가 부득이한 선천적 소인의 결과로서 치유 불가능한 것이라고 보는 견해는 타당성을 잃고 있다. 또 동성애 행위자들의 행태를 살펴보면 성적 지향이 자발적인 선택 대상임을 알 수 있다.
현재 제안된 인권헌장은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서울대 판이라 할 수 있다. 인권헌장은 향후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 더욱 실질적인 구제수단과 절차를 마련할 것이다. 나아가 다른 대학교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서울대 인권헌장의 제정은 일종의 ‘기획 입법’이라 볼 수 있다. 따라서 인권헌장에 내재한 우려와 위험성을 명확히 드러내고 그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절실히 요청된다.
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