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비·표준계약서 빼고 작업시간만 조정… 택배업계 “실효성 없다”

입력 2020-11-13 04:02
김현미(왼쪽) 국토교통부 장관이 1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밤 10시 이후 심야배송을 제한하는 택배기사 과로방지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오른쪽은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 윤성호 기자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라 업무량이 폭증한 택배기사의 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작업시간 한도를 정하고 밤 10시 이후 심야 배송을 제한하는 것을 골자로 한 대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택배기사 과로의 근본 원인으로 꼽히는 택배 가격 문제나 표준계약서 마련은 내년으로 미뤘다. 당장 택배업계에서도 정부 대책이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반응이 나왔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과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1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이런 내용이 담긴 ‘택배기사 과로 방지 대책’을 발표했다. 코로나19 이후 택배 물량이 급증한 탓에 올해 들어서만 10명 이상의 택배기사가 숨진 데 따른 정부 차원의 첫 대책이다.

정부는 우선 택배사별로 1일 최대 작업시간을 정하고, 그 한도 안에서 작업을 유도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정부는 택배기사 작업 조건에 대한 실태조사와 직무 분석 등을 거쳐 적정 작업시간의 기준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택배기사에 대한 오후 10시 이후 심야 배송 제한도 각 택배사에 권고한다. 택배기사는 대부분 개인사업자 신분으로 택배사나 대리점과 위탁계약을 맺고 일하는 특수고용직(특고) 종사자로 분류돼 근로기준법이 규정한 근로시간 제한 적용을 받지 않는다. 정부는 오후 10시 이후 업무용 앱(애플리케이션) 접속을 차단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택배 물량 조정으로 지연배송이 발생하더라도 택배기사에게 불이익을 못 주도록 권고한다는 것이다. 대부분 택배사가 소속 기사의 작업시간과 안전·건강 등에 대한 관리 책임을 지도록 하는 데 방점이 찍혔다.

토요일 휴무제 등 노사 협의를 거쳐 주5일 작업 확산도 유도하기로 했다. 정부는 그동안 택배기사 과로 배경으로 지목됐던 분류작업 부담을 줄이기 위해 우선 도시철도 차량기지와 공영주차장 등 유휴부지에 ‘공유형 택배 분류장’ 30곳을 짓기로 했다. 또 분류작업에 대한 기준도 노사 협의를 거쳐 명확화·세분화하고 이를 표준계약서에 반영하기로 했다.


그러나 택배업계 표준계약서는 이번 대책에 포함되지 않았다. 김 장관은 “노사와 협의해 내년 상반기까지 사업자·대리점, 대리점·종사자(택배기사) 간 표준계약서를 마련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또 그동안 택배기사 과로의 근본 원인으로 지목됐던 택배비(단가) 문제에 대해서도 구체적 대책은 내년으로 연기했다.

이미 정부 발표에 앞서 주요 택배사들이 자체적으로 대책을 내놓긴 했지만, 실효성 논란이 남은 상태다. 한진택배는 이달부터 심야 배송을 전면 중단하고, 택배 분류 지원 인력도 1000여명 추가 투입키로 했고, CJ대한통운과 대리점주들도 3000명의 분류 인력을 추가 투입하는데 드는 인건비를 전액 부담키로 했다. 그러나 택배노조 등에서는 택배사가 분류작업과 인력투입 비용 등을 택배기사들에게 전가하려 한다는 반발이 나오고 있다. 이 때문에 현재 평균 2200원 수준인 택배비를 보다 현실화해서 택배사의 ‘단가 후려치기’ 관행을 끊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 상황이다. 김 장관도 “택배기사 처우가 개선되려면 분류인력 확충, 설비투자 및 적정 배송 수수료 지급 등이 이뤄져야 한다”며 “결국 택배 가격 구조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택배업계에서는 정부의 ‘택배기사 주5일제 도입’ 등에 대해 택배기사가 토요일 휴무를 하더라도 남은 물량을 월요일에 소화해야 하기 때문에 실질적 도움이 안 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세종=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