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한국의 바이든

입력 2020-11-13 04:03

이제는 ‘한국의 바이든’이 나올 때 아니냐고 주장하며 벌써 들썩이는 사람들이 있다. 미국이 77세의 최고령 대통령을 선택했으니 한국에서도 연륜을 쌓은 대통령이 나올 수 있지 않겠냐는 말이다. 과거에는 대통령 후보의 나이가 많다는 게 약점으로 여겨졌다. 더욱이 북한과 대치하는 한국에서는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의 생물학적 나이가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을 수 없었다. 법 규정에는 없지만, 관념처럼 굳어진 ‘고령출마 제한’은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의 당선으로 힘을 잃게 될까.

1987년 대통령 직선제 도입 이후 탄생한 대통령 가운데 70대는 김대중(DJ) 대통령이 유일하다. DJ는 당선 당시 72세로, 민주화 이후의 최고령 대통령이다. DJ 이후로는 70대 대선 주자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국민이 직접 선출한 대통령 7명의 당선 시점을 기준으로 한 평균 연령은 62.4세다. 고건 전 국무총리와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정도가 고령의 대선 주자로 꼽혔다. 고 전 총리는 17대 대선의 유력 후보로 떠올랐을 당시 69세였다. 노무현 대통령의 직무를 대행했던 고 전 총리는 안정적인 국정 관리로 ‘행정의 달인’이라고 불렸다. 하지만 고 전 총리는 2007년 대선을 11개월 앞두고 “대결적 정치구조 앞에서 저의 역량이 너무나 부족함을 통감한다”면서 대권 도전을 돌연 포기했다.

바이든 당선인보다 두 살 어린 반 전 총장은 19대 대선을 앞두고 금의환향했다. 유엔 사무총장직을 마치고 돌아왔을 당시 72세였는데 ‘고령 리스크’가 그의 약점으로 거론됐다. 반 전 총장은 2017년 1월 귀국 직후 인천국제공항에서 ‘국민 대통합’이라는 대권 메시지를 던진 뒤 영호남 지역을 누볐지만 20일 만에 출마를 포기했다. 고 전 총리와 반 전 총장의 갑작스러운 하차는 세 차례 도전 끝에 대권을 거머쥔 바이든의 권력 의지와 대비된다고 말할 수도 있다. ‘대쪽 판사’ 이미지로 인기를 끌었던 이회창 전 총리는 세 번째 대선에 출마했을 때 72세였다. 하지만 이 전 총리는 이전에 장남의 병역 면제 의혹 등으로 입은 상처를 끝내 회복하지 못했다. 공통적으로 이들은 엘리트 관료로서의 스펙을 쌓았지만, 현실 정치의 벽을 넘기에 역부족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현재 여의도에선 현실 정치의 한복판에 있는 바이든 꿈나무들의 이름이 거론되기 시작했다. 정세균 국무총리와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비롯한 정치인들이 비로소 용꿈을 꿀 수 있게 됐다는 얘기다. 올해 정 총리는 70세, 김 위원장은 80세다. 정 총리는 최근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미국 국민들이 바이든 당선인을 선택한 시대정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바로 통합과 포용”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자신의 대권 행보에 관해 특별한 언급을 하지 않던 정 총리가 바이든의 시대정신을 언급한 것은 단숨에 대권 도전의 뜻이라고 받아들여졌다. 김 위원장은 대권 도전 가능성에 대한 기자들 질문에 “말도 안 된다” “쓸데없는 소리”라고 일축하거나 불쾌한 반응을 내놓기도 했다. 다만 야권 일각에는 “용띠인 김 위원장이 진짜 용이 될지는 정말 아무도 모른다”는 말을 마치 천기누설인 양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정 총리와 김 위원장 등이 실제 대통령의 평균 연령을 높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한국에서 20대 대선을 치르는 2022년 3월 79세인 바이든이 그때까지 어떤 평가를 받을지도 고연령층 주자들에게는 변수가 될 수 있다. 야당의 한 의원은 “바이든의 당선은 반(反)트럼프 표심이 수년간 쌓여 나타난 결과였다. 우리나라에선 제2의 외환위기 수준의 국가적 위기가 발생해야 안정적인 고령의 리더십이 주목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경택 정치부 차장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