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 22일 국회 정보위원회는 국가정보원의 대공수사권을 폐지하고 정보공개를 확대하는 내용의 국가정보원법 전부개정안에 대해 본격 심의에 착수했다. 정부와 여당은 이번 개정안이 국정원의 국내 정치 개입 가능성을 제도적으로 차단하는 내용이라면서 올해 정기국회에서 법안을 처리하겠다는 입장이다.
현재 국정원은 국외 정보 및 국내 보안정보(대공·대정부전복·방첩·대테러 등)를 수집·작성 및 배포하고 형법 중 내란·외환의 죄, 군형법 중 반란의 죄, 국가보안법 및 군사기밀보호법에 규정된 죄 등을 수사하고 있다(국정원법 제3조). 이들 범죄는 국민의 생명과 자유, 국가의 존립과 안전에 직결되는 범죄로 조직적이고 비밀리에 행해지는 특성이 있다.
정보는 수사의 단서가 되고, 수사는 새로운 정보를 창출한다. 국내외 정보와 수사는 상호 유기적·복합적으로 얽혀 있어 단선적으로 분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국외 정보와 국내 정보를 분리하면서 무분별하게 공개하고 이들 정보와 대공수사를 분리하는 조직 개편은 정립(鼎立)된 국가안보의 3축 체제를 허물고 국정원을 불구로 만들어 국가적 재난을 초래할 수 있다.
국정원의 대공수사권 폐지는 국가안보 수사역량의 약화를 초래할 수 있다. 간첩 등 대공수사는 숨겨지고 파편화된 정보를 종합·분석해 실체적 진실을 밝혀야 하므로, 국내외 정보와 첨단과학에 대한 융합지식이 필요한 전문 분야이다. 또 상당한 시간과 인력·물자가 필요하다. 경찰은 정보, 경비, 교통, 범죄 진압·수사 등 다양한 분야의 업무를 담당하고 있어, 상당한 시간을 요하는 대공수사는 경찰의 긴급 현안에서 밀리기 쉽다. 상급자 관심을 끌지 못하고 인사에서 소외될 가능성이 큰 대공수사 분야에 실력 있는 전문가가 지원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런 상황에서 경찰이 국정원의 축적된 대공수사 역량을 이관받는다 해도 그 전문성을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고, 새로운 시대변화에 상응하는 대공수사의 전문성을 제고한다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다. 또 경찰 수사는 국정원 수사보다 외부에 노출되기 쉽고 보안에 취약해 대공수사를 근본적으로 방해할 수 있다. 북한이 적화통일을 포기하지 않은 채 핵무기로 무장하고 있고, 미국 중국 등 세계 최강국들이 한반도 주변에서 패권 경쟁하고 있는 안보 현실에서 국정원의 대공수사권 폐지는 총성 없는 정보전쟁의 축을 무너뜨려 국가안보 근간을 훼손할 수 있다.
나아가 대공수사권의 경찰 이관은 인권침해 가능성을 크게 한다. 경찰은 경찰청장을 정점으로 하는 방대한 조직을 가지고 있고, 이를 이용해 광범위한 국내 정보를 수집하고 대부분 사건을 수사하며 집회·시위를 진압하는 등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 이에 더해 대공수사를 전담하게 되면 통신제한조치(감청, 특히 패킷 감청) 등을 통해 과거보다 훨씬 방대한 정보를 획득할 수 있고, 이를 국가안보와 관련 없는 곳에 사용할 가능성은 더욱 커진다. 과거 5공화국 시절 남영동 분실의 강압 수사 망령이 되살아날 수도 있다.
성경은 자기의 일에 능숙한 사람은 왕 앞에 설 것이요 천한 자 앞에 서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한다(잠언 22장 29절). 국가안보와 관련된 작은 실수와 오판은 국가 존립과 안전을 치명적으로 훼손하고, 그 구성원의 생명과 자유, 삶과 행복을 송두리째 파멸시킬 수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국가안보를 확고히 할 수 있는 최고의 전문가 및 조직이 필요하다. 국정원의 대공수사권 폐지와 정보공개 확대는 재고돼야 한다. 국정원 기능과 관련해 인권 침해적 요소가 있다거나 국내 정치 개입 소지가 있다면, 이를 최소화할 다른 방법을 찾는 것이 정도다.
안창호 전 헌법재판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