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타인의 입장

입력 2020-11-13 04:05

아이고! 제자의 논문을 첨삭해주다 나도 모르게 혀를 찼다. 성실하고 똑똑한 학생이라 열심히 공부해 썼겠으나, 욕심이 앞섰는지 남이 읽기에는 도통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렵게 쓰여 있었다. 차라리 내용이 틀린 것이라면 첨삭이 간단할 텐데. 이런 경우는 읽는 사람을 생각해서 쓰는 훈련이 안된 탓이다.

그러다 문득 며칠 전 일이 생각났다. 수업 중 손에 익지 않은 비대면 강의 프로그램에 문제가 생겼다. 시간도 촉박하고 혼자서는 해결이 안 될 것 같아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내 이름을 알리고 상황을 설명하려는데, 그가 내 말을 끊더니 그게 무슨 수업이냐고 물었다. 순간 당황했다가 강의명을 말했더니 이번엔 몇 학년 대상 강의냐고 또 물었다. ‘아니 담당자가 어떻게 그날 수업도 몰라?’ 하는 마음을 간신히 삼키며 답했다. 제 시간에 못하면 어쩌나 초조해지려던 찰나, 다행히 문제는 쉽게 해결돼 늦지 않게 수업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수업을 마치고 나오면서 보니, 각기 다른 방에서 여러 강의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었다. 그제야 아까 담당 직원이 계속 이것저것 물은 이유에 짐작이 갔다. 동시에 열린 수많은 강의 중 어떤 것에 문제가 생긴 건지 빨리 찾으려던 거였으리라. 나에겐 내 강의 하나뿐이지만, 그가 관리하는 수업은 여럿일 수 있다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탓이다.

이렇게 전화 한 통도 남의 입장을 생각하기 어려운데 논문 첨삭을 어쩔 것인가 고민하고 있던 중 연구실 밖 병원 복도에서 점점 커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아니라고, 내 말 좀 들어보라니까!” “너야말로 내 말 좀 들어!” 뭔가 오해가 쌓인 그들의 다툼은 도저히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경쟁하듯 으르렁으르렁하는 소리를 듣고 있자니, 나부터라도 앞으로는 상대방 입장을 먼저 생각해보며 말하고 듣는 노력을 해야겠다 싶다. 말이야 쉽지, 예나 지금이나 그게 참 어렵지만 말이다.

배승민 의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