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 재해 기업이 손해액 5배 배상’ 법 제정 청신호 켜졌다

입력 2020-11-12 04:05
강은미 정의당 원내대표가 11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중대재해에 대한 기업 및 정부 책임자 처벌법안’과 관련해 정의당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기업의 잘못으로 노동자가 사망한 경우 형사처벌과 손해배상 책임을 강하게 묻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중대재해법) 제정에 청신호가 켜졌다. 정의당이 발의한 제정안에 국민의힘이 손을 내밀고, 더불어민주당도 노동계와 마련한 법안을 전격 발표하면서 도입 논의가 급물살을 타는 양상이다.

중대재해법은 고(故) 노회찬 의원이 2014년 대표 발의한 숙원 법안이다. 그러나 19, 20대 국회 모두 제대로 논의조차 이뤄지지 못한 채 폐기됐다. 최근 여야 공감대가 분출하며 입법 가능성이 커졌으나 여전히 각론에서 이견이 남아 있어 최종 문턱을 넘기까지는 난항이 예상된다.

민주당 노동존중실천추진단 소속 우원식 박주민 의원 등은 11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태일 열사 50주기(11월 13일)가 다가왔지만 산업재해 문제는 여전하다”며 중대재해법 제정안을 발표했다. 안전 조치 소홀로 중대한 산업재해가 발생할 경우 ‘법인과 기업·정부 책임자’를 형사처벌토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2년 이상 유기징역 또는 5억원 이상 벌금이란 하한선도 설정했다. 특히 재해 책임이 있는 법인·기관에 손해액의 최소 5배를 배상하도록 규정할 방침이다.

우 의원은 “중대재해법 제정에 대한 열망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며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초당적으로 협력하겠다’고 한 만큼 이번 국회에서 통과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박 의원도 “당과 협의해 당론으로 채택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국회에선 앞서 강은미 정의당 원내대표가 21대 국회 ‘1호 법안’으로 이 법을 당론 발의한 바 있다. 전날 김 비상대책위원장을 비롯한 국민의힘 지도부는 정의당·노동계와 함께 ‘중대재해 방지 및 예방을 위한 정책 간담회’를 열고 “중대재해법 입법에 힘을 보태겠다”고 밝혔다. 민주당이 이날 중대재해법 제정안을 꺼내든 것은 이 같은 야당들의 정책 드라이브를 의식한 측면이 크다. 강 원내대표는 이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국민의힘이 ‘산업재해 관련해선 여야가 따로 없다’고 해서 민주당도 자극받은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야가 초당적 협력 의사를 밝히면서 제정 논의에도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정의안 법안과 민주당 법안을 병합 심사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세부 항목에서 조율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민주당 법안은 정의당 법안과 달리 재해를 산업재해와 시민재해로 세분화했다. 특히 민주당은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선 적용을 유예하도록 했는데 이를 둘러싼 여야 간 입장차가 커 보인다. 박 의원은 “영세한 업체는 안전관리자를 두는 게 사실상 어렵다”며 “정부 지원·보조제도 마련 등이 이뤄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반면 강 원내대표는 “50인 미만 사업장에도 적용해야 한다”고 반발하고 있다.

정의당은 한 발 더 나아가 민주당에 ‘중대재해법 당론 채택’을 요구하고 있다. 민주당 내에서 중대재해법보다 기존 산업안전보건법을 개정하자는 기류가 있다는 점을 고려한 주장이다. 강 원내대표는 “이낙연 대표가 지난 9월 7일 국회 교섭단체 연설에서 ‘중대재해법이 빨리 처리되도록 노력해 달라’고 발언한 바 있다”며 “당론으로 채택해 그 말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는 이날 오후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당론 채택은) 그렇게 어려운 문제가 아닐 것”이라고 답변했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