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 정책 방향이 결정되지 않았는데 우리 정부가 벌써 ‘아전인수’식 해석을 내놓고 있습니다. 상대가 준비되지 않았을 때 우리 입장을 먼저 주입하겠다는 성급함은 자칫 김대중 전 대통령 때 겪었던 ‘외교 참사’로 나타날 수 있음을 유의해야 합니다.”
김성한 전 외교부 2차관은 지난 10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버락 오바마 행정부 때와 마찬가지로 바이든 캠프도 북핵 관련 ‘비확산파’와 ‘비핵화파’로 나뉘어 있다”며 “바이든 행정부가 어디에 방점을 찍느냐에 따라 달라질 텐데 우리 정부가 성급하게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비확산과 비핵화의 차이는 크다. 비확산은 북핵을 한 번에 제거할 수 없으니 현재의 북핵을 동결해 다른 나라로의 확산을 막고, 단계별로 핵을 제거할 때마다 혜택을 주는 방식이다. 반면 비핵화는 처음부터 비핵화의 최종 목적지를 설정하고 구체적인 로드맵을 짜는 것을 의미한다.
김 전 차관은 이런 차이를 설명하며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9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남북 관계에서) 새로운 기회와 해법을 기대한다”고 한 발언을 언급했다. 바이든 당선인은 대선 캠페인 당시 2차 TV토론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핵 능력 축소에 동의하는 조건으로 김 위원장을 만날 수 있다’고 했다. 김 전 차관은 우리 정부가 이 ‘축소(reduce)’라는 용어에 주목해 비확산파 접근이 유리하다고 판단해 바이든 당선인이 ‘스몰딜’에 관심이 많다는 식으로 해석했다고 진단했다.
김 전 차관은 “이렇게 바이든 행정부의 입장을 예단할 경우 치러야 할 후폭풍이 클 수 있다”며 김대중 전 대통령 재임 기간 중 일화를 거론했다. 대북 유화책인 ‘햇볕정책’을 펼치던 김 전 대통령은 2001년 1월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취임한 지 두 달 만에 정상회담을 했다. 김 전 대통령은 햇볕정책에 열변을 쏟아냈지만 부시 전 대통령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고, 기자회견에서 김 전 대통령을 ‘디스맨’으로 지칭하는 외교적 결례까지 보였다. 김 전 차관은 “상대가 준비돼 있지 않을 때 내 생각을 주입하겠다는 성급함이 외교 참사로 나타난 대표적인 사례”라며 여권 일각에서 제기되는 신속한 한·미 정상회담에 대해서도 주의를 당부했다.
김 전 차관은 바이든 행정부가 꾸려지는 동안 한·미 간 여러 현안의 우선순위를 정리하고 준비를 시작하라고 조언했다. 그는 “바이든 측 인사들과의 만남에 몸 달아하지 말고 먼저 그들의 발언이나 (그들이 추진하려는) 정책이 우리와 상호양립할 수 있는지, 절충점은 무엇인지 등을 차분히 분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전 차관은 특히 “한·미동맹을 다차원적으로 확장하고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나올지 모를 미국의 새로운 요구에 대비해야 한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미국이 ‘한·미 과학기술동맹’을 제안할 것으로 예측했다. 5G나 인공지능(AI) 등 첨단기술 분야에서 동맹을 맺자는 것이다. 김 전 차관은 “이런 첨단기술이 앞으로 무기체계에 들어갈 텐데, 이 기술을 중국에도 파는 건 동맹끼리 할 수 없는 일이라는 식의 압박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런 문제를 부처별로 심도 있게 토론하며 대비할 것을 주문했다.
김 전 차관은 또 “한·미·일 동맹을 구축해야 하는 상황에서 한·일 관계가 좋지 않다는 점을 미국이 매우 불편해한다”며 한·일 관계에서도 바이든 행정부가 한국에 유리한 쪽에 설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김영선 기자 ys8584@kmib.co.kr
[바이든시대, 전직 고위당국자에게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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