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의 번제처럼… 하나님 감동시킬 예배 드리자

입력 2020-11-13 18:59
2001년 7월 경기도 양평 양수리수양관에서 개최된 ‘청소년 숲과 나무 성경통독 캠프’ 참석자들이 조병호 서울 하이기쁨교회 목사와 함께 요한계시록 22장을 읽고 있다.

피조물인 인간이 무엇으로 창조주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있을까요.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앞에 인간이 무엇을 드려서 하나님을 감동하시게 할 수 있을까요. 그 길은 오직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제사뿐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갑자기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이미 구약에서부터, 더 깊게 들어가면 창세 전부터 계획된 하나님의 사랑 이야기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말 그대로 기적처럼 이삭이 태어났습니다. 이후 아브라함은 이삭이 어릴 때부터 번제 드리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어느 시점부터는 아들 이삭과 함께 번제를 드리면서 제사에 대해 가르쳤습니다. 아들 이삭에게 번제를 가르치며 대대로 제사를 이어갈 수 있도록 교육했을 것입니다.

이삭이 어려서부터 가정에서 번제에 대해 배웠다는 증거는 아브라함과 이삭이 3일 길이나 멀리 떨어진 모리아산으로 제사드리러 가는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집에서 출발한 지 3일이 되어 산이 멀리 보이자 이때 이삭이 아브라함에게 질문합니다. 사실 이삭이 지금까지 아버지의 번제를 지켜본 바로는 아버지는 하나님께 제사를 드림에 있어 한 치의 소홀함이 없는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제사를 드리러 가면서 불과 칼과 나무는 준비했는데 번제에 쓸 양을 준비하지 않은 것이 의아했습니다. 그래서 이삭이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창 22:7)라고 질문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아버지 아브라함이 중요한 이 순간에 자신의 목숨보다 소중한, 사랑하는 아들에게 꼭 필요한 대답을 해줍니다.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창 22:8)

마침내 하나님께서 일러 주신 곳 모리아산에 이르자 아브라함은 제단을 쌓아 나무를 펼쳐놓고 번제를 위한 모든 준비를 마칩니다. 그때까지도 하나님께서 준비하셨다는 번제할 어린 양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말없이 아들 이삭을 묶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의 행동은 그동안 배워온, 정결한 짐승을 제물로 취하여 드린 ‘노아의 번제’(창 8:20)와 달랐습니다.

그제야 이삭은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번제의 제물이 자신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 순간 이삭은 아버지의 손을 뿌리치고 도망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삭이 아버지의 행동에 어떤 저항도 하지 않고 순순히 묶였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떨리는 손으로 아들의 심장을 향해 칼을 정조준했습니다. 그리고 가장 고통 없이 단숨에 아들을 죽이기 위해 손에 힘을 주었습니다. 그때 그 순간, 하늘에서 여호와의 사자가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고 부르십니다.

크고 떨리는 목소리로 다급하게 아브라함을 부르신 음성이었습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내가 여기 있나이다.”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창 22:11~12)

아브라함의 모리아산 번제 그 순간은 첫째, 하나님의 가슴이 터지는 순간이었습니다. 피조물인 인간 두 명이 아무도 없는 산에서 행한 번제(예배)가 창조주 하나님의 가슴을 터지게 만든 것입니다.

둘째, 아브라함과 이삭이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경험한 순간이었습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라고 부르신 하나님의 심장 터지는 소리는 아브라함뿐만 아니라 이삭이 함께 들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향한 아브라함의 순종으로 말미암아 아들 인생에 최고의 선물을 안겨준 것입니다.

셋째, 모리아산 번제는 2000년 후 갈보리산 번제의 예표가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번제의 제물인 아들을 묶는 아버지의 순종, 그리고 자신을 묶는 아버지에게 순종하는 아들의 모습은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서 ‘사랑과 순종’이라는 관계가 아니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아브라함의 모리아산 번제는 아들 이삭을 죽이기 직전에 하나님께서 ‘스톱’을 외치셨습니다. 그런데 2000년 후 성부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모두의 죄를 대신해 갈보리 십자가에서 ‘스톱’ 없이 화목제물로 내어주셨습니다.

하나님과 아브라함은 갈보리산과 모리아산에서 서로를 위해 목숨과 같은 아들을 내어주는 경험을 공유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나의 벗’(사 41:8)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모리아산 번제는 예수님의 갈보리산 번제를 향한 하나님의 깊은 계획으로 시작됐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아브라함의 모리아산 번제와 예수님의 갈보리 십자가의 온전한 제사의 의미를 통(通)으로 알아야 합니다. 이처럼 구약의 제사를 알면 우리는 좀 더 깊은 영성의 영적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조병호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