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고나는 것으로 착각하기 쉽지만, 시각장애는 갑자기 찾아온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17년 장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시각장애 발생 원인은 질병·사고 등 후천적인 이유가 92%에 이른다. 노화로 인한 자연적인 시력 저하, 안구질환까지 고려하면 시각장애는 우리 모두에게 예정된 미래에 가깝다.
이러한 시각장애인의 곁을 든든하게 지키는 존재가 있으니 안내견이다. 전국에 70마리쯤 있다. 한 마리의 안내견을 육성하려면 1억원 넘는 비용이 발생한다. 그 외에도 기초 사회화, 은퇴 후 가정 분양에는 시민들의 자원봉사가 절실하다. 안내견 훈련사들은 “안내견 한 마리 키우려면 온 사회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국민일보는 지난 10일 삼성화재안내견학교의 협조로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서현역에서 안내견 체험을 진행했다. 이날 배정된 견공은 체중 약 29㎏인 2살 리트리버 듀오. 30주의 안내견 훈련 수료를 앞둔 듀오는 눈을 가린 기자를 이끌고 횡단보도 건너기, 계단 오르기를 능숙하게 수행했다.
“영리하네”… 계단, 횡단보도서 정지
첫 체험 코스는 길이 200m, 폭 6m의 넉넉한 인도였다. 훈련사는 “안내견과 기자가 초면이라 어색할 테니 쉬운 길을 골랐다”고 설명했다. 그가 건넨 안대를 착용하자 세상이 캄캄해졌다. 눈을 가리자 청각, 촉각이 곤두섰다. 멀리 차량 지나가는 소리, 바닥의 울퉁불퉁한 감촉에도 화들짝 놀랐다. 눈을 떴을 때는 수십m 앞을 대비할 수 있었는데, 눈을 감으니 걸음마다 줄타기하듯 아슬아슬했다. 잠시 후 훈련사가 안내견 손잡이를 건넸다.
“손잡이를 가볍게 잡으세요. 속도가 너무 빠를 경우 잡아당기면 됩니다.”
“몸에 힘을 빼세요. 그저 안내견을 믿고 쭉 걸으세요.”
듀오의 걸음걸이는 무척 빨랐다. 장애물 없는 인도라 그런지 걸음을 재촉하기도 했다. 속도를 감당하기 어려워 손잡이를 잡아당기자 이를 눈치챈 듀오가 속도를 절반으로 늦췄다. 안내견은 이후 ‘왼쪽, 오른쪽, 가자, 멈춰’ 등 구호에도 반응했다. 잘 가던 듀오가 걸음을 멈췄다. 발밑에 미끌미끌한 연석이 느껴지는 것을 보아 건널목에 도착한 거다.
머리를 쓰다듬으며 “잘했어”라고 칭찬하자 듀오가 손을 핥았다. 안내견은 파트너를 인솔하고 칭찬 받는 과정을 놀이처럼 즐긴다. 듀오는 에스컬레이터, 계단 앞에서도 정지했다. 특히 몸을 세우거나 기울이며 계단의 경사도를 미리 파트너에게 알렸다. 훈련사는 “듀오는 안내견 중에서도 배려심이 유별나다”고 설명했다.
체험 1시간이 지나자 훈련사는 “오늘 교육은 여기까지 하자”고 말했다. 30주의 훈련 동안 안내견의 교육은 주 5일, 하루 1시간 이내로 제한된다. 견공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교육을 즐기도록 돕는 차원이다. 인근 카페에 자리를 잡자 비로소 듀오는 기자 곁에 엎드려 휴식을 취했다.
짧은 체험을 마치자 안내견을 더 자세히 알고 싶어졌다. 경력 17년차의 안내견 훈련사 이명호(41·사진)씨에게 물었다.
베테랑 훈련사가 말하는 안내견의 삶
-안내견의 자기 희생이 대단하더라.
“안내견은 희생한 적 없다. 스스로 좋아하는 행동을 할 뿐이다. 옛말에 ‘말을 강가에 데려갈 수는 있어도 물을 먹일 수는 없다’고 하지 않나. 전체 후보견 중 안내견의 자질을 타고난 경우는 30%에 불과하다. 억지로 다그친다고 안내견이 될 수 없다. 맞지 않는 개는 일반 가정견으로 살아가면 된다.”
-안내견에 적합한 성격이 있는지.
“삼성화재안내견학교는 공격성, 유혹성, 민감성 등 5가지 기준으로 평가한다. 일단 유혹성을 보자. 안내견은 임무를 수행하면서 길가의 낙엽과 음식물 냄새를 맡고 싶다거나 지나가는 개, 고양이와 인사하고 싶다는 유혹을 받는다. 이러한 방해요소 앞에서 집중력을 잃지 않고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민감성은 파트너의 고통에 반응하는 능력이다. 파트너가 기둥에 부딪혀서 넘어지거나 ‘아야’ 소리를 내는데 안내견은 상관없다는 식으로 가버리면 곤란하다. 제일 중요한 항목은 공격성이다. 다른 항목은 5점 척도로 평가하는데 공격성만큼은 ‘적합’ 혹은 ‘부적합’으로 구분한다. 안내견이 사람을 공격했다는 소문이 나면 어떨까. 전체 안내견의 존립이 위협받을 것이다. 그래서 공격성은 조금이라도 있으면 탈락이다. 사람에게 으르렁거리기만 해도 탈락시킨다.”
-훈련 과정도 궁금하다.
“크게 다섯 단계를 거친다. 먼저 태어나서 생후 7주까지는 퍼피(Puppy) 과정이다. 안내견학교에서 이유식을 먹이고 배변 교육을 한다. 둘째로 생후 1년까지 일반 가정에서 길러지는 퍼피워킹(Puppy Walking) 과정이다. 후보견의 성격을 꼼꼼하게 관찰하고 각종 공공시설과 산·바닷가 등을 다니며 사회 경험을 길러줄 봉사자를 모집한다. 식비, 의료비 등 모든 돌봄비용은 안내견학교에서 지원한다. 퍼피워킹을 마친 견공은 안내견학교로 돌아와 최대 30주 훈련을 받는다. 교육을 통과한 안내견은 시각장애인에게 배정된다. 시각장애인도 안내견학교에서 2주 합숙훈련을 받으며 안내견 돌보는 방법을 배운다. 10살이 넘은 안내견은 은퇴해 반려견 자격으로 입양간다. 1순위는 오랜 세월을 함께한 시각장애인이며, 어릴 적 퍼피워킹을 도운 가정에서 다시 입양하는 경우도 많다. 퍼피워킹 당시엔 꼬마였던 아이들이 어느덧 성인이 돼서 은퇴한 안내견과 재회하는 모습은 감동적이다.”
-지팡이와 안내견, 시각장애인에겐 무엇이 더 편할까?
“어느 시각장애인이 말하길, 안내견의 도움을 받은 날 처음으로 길거리 음악소리를 들었다더라. 온 신경을 지팡이에 집중하느라 그간 음악 소리를 못 들은 것이다. 그만큼 안내견은 든든한 파트너다. 하지만 불편한 점도 많다. 배설물을 치우고, 밥을 주고, 목욕도 시켜줘야 한다. 결론적으로 흰지팡이가 좋냐, 안내견이 좋냐, 이런 질문은 좋지 않다. 둘 다 장애인이 자유롭게 활동하도록 돕는 유용한 방식이다. 장애인 입장에선 선택지가 많아질수록 좋다.”
-안내견을 대하는 사회적 인식은 나아졌는지.
“길을 가다 마주친 초등학생마저 “엄마, 쟤는 안내견이야. 사진 찍거나 만지면 안 돼”라고 할 만큼 안내견에 대해 잘 알더라. 지난 4월에는 김예지 국회의원의 안내견 조이가 국회 출입을 거부당했다가 뒤늦게 허가받은 일이 있었다. 덕분에 안내견의 존재가 세상에 잘 알려져 좋았다. 물론 식당, 커피숍 등에선 아직도 비일비재하게 입장을 거부당한다. 안내견이 제 역할을 하도록 시민들이 더 많이 도와 달라.”
이성훈 기자 tell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