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중에 가장 난해한 책이 레위기라고 말한다. 그러나 알고 보면 레위기는 신약의 로마서처럼 중요한 내용으로 가득하다. 레위기의 핵심은 다섯 가지 제사다. 이 다섯 가지 제사로 우리가 어떻게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순복음삼마교회는 훈련받을 때 레위기를 매우 중요하게 다룬다. 남성들은 대부분 레위기에서 변화되고 새로워진다. 어떻게 예배를 드려야 성령이 임하는지, 성령을 받은 성도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레위기에 매우 구체적으로 나와 있기 때문이다.
그중 예배의 기초가 되는 ‘소제’는 매우 중요하다. 소제를 드리는 방법과 순서를 살펴보자. 첫째, 소제는 보리의 첫 이삭으로 드려야 한다. 보리는 매년 첫 번째 나오는 열매다. 이는 영적인 의미에서 ‘예수 안에서 새롭게 탄생한 우리의 모습’이다. 예배는 아무나 드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주님의 보혈로 새롭게 탄생한 자만이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는 권리가 있다. 그래서 첫 곡식으로 드리라고 하신 것이다.
둘째, 보리를 볶아서 찧어 고운 가루를 만들어야 한다. 이는 우리의 이성이나 지식이 깨어진 상태를 의미한다. 우리가 아담의 후손이었을 때 생각하는 것이나 뜻하는 것이나 계획하는 것이 항상 악할 뿐이라고 말씀하셨다. 교회 안에 깨어지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있다면 성령이 임해도 반죽이 되지 않을 것이다. 성령 안에서 ‘같은 말, 같은 마음, 같은 뜻’을 갖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말씀 앞에서 고집, 자아가 깨어지는 훈련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귀신이 어디에 있는지 궁금해 한다. 목회 경험에서 봤을 때 귀신은 사람들의 고집 속에 있다고 생각한다. 자기 생각을 끝까지 관철하려 하는 그 고집이 바로 사단의 철옹성이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의 진노가 고집에 임한다고 하지 않았던가.(롬 2:5)
셋째, 보릿가루에 기름을 넣어 반죽해야 한다. 기름은 성령을 의미한다. 소제를 만들 때 보릿가루에 기름을 넣고 반죽하는데 이를 영적인 의미로 보면 깨어진 마음에 성령의 기름 부음이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여기서 키워드는 ‘기름’이다. 영적으로 해석하면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서는 깨어진 마음으로 만족하지 말고 성령충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기름은 보릿가루가 화덕에 들어갈 때 타지 않게 하는 역할을 한다. 만약 기름 없이 화덕에 넣으면 눌어붙어서 뒤집을 때마다 탄 냄새가 가득하고 결국 먹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우리가 성령충만함 받지 않으면 교회 생활하면서도 불시험이 올 때 견디지 못하고 원망과 불평이 가득하게 된다. 시험의 원인은 김 집사나 이 집사, 박 장로, 담임목사가 아니다. 자신에게 기름 부음이 충만하지 못한 탓이다. 그래서 고운 가루에는 기름이 충만하게 부어져야 하는 것이다.
넷째, 철판이나 화덕에 구웠다는 것이다. 화덕에 넣어 굽는다는 것은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 다가오는 연단과 시험을 말한다. 다윗도 하나님이 준비한 화덕에 들어갔다. 그러나 화덕에 들어가기 전에 그에게 성령충만함이 임했다.(삼상 16:13) 화덕에 들어가기 전에 반드시 성령을 부어주셨던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흐트러지지 않기 위해서다. 화덕에 들어갈 때 상처로 인한 탄 냄새가 아니라 간증으로 인한 향기로운 기름 냄새를 내기 위해서다.
다섯째는 조각이다. 반죽이 된 피자가 모두 구워지면 가위로 자르는데 자르다 보면 모서리도 있고 가운데 토막도 있게 된다. 중요한 것은 모든 떡이 한결같이 하나님께 드려진다는 점이다.
그러나 땅에 떨어진 것, 더럽혀진 떡은 사용할 수 없다. 이는 민수기에서 훈련받게 될 ‘위치 지키기’와 일맥상통하는데, 그리스도인이 질서 있게 자기 위치, 즉 자기 역할로 돌아가 충성 되게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삶을 변형시키지 않고 떠나지 않고 그 위치를 지키는 것이 하나님께 드려지는 산제사인 것이다.
여섯째는 유향이다. 유향은 향기로운 삶을 의미한다. 예배자의 모습 중에 중요한 것은 향기로운 모습이다. 그래서 우리가 훈련할 때 반드시 우리의 신앙이 이웃에게 향기로운지를 점검해야 한다. 화덕에서 제 모양이 흐트러지지 않았다면 이제 남은 것은 말이나 행동에 있어 형제자매, 이웃에게 향기롭게 사는지 점검해야 한다.(고후 2:15)
일곱째는 소금을 치는 것이다. 소금은 소제의 마지막 순서다. 소금을 치는 이유는 하나님이 세워주신 위치에서 변치 않고 맛을 내며 영향력 있는 삶을 사는 것이다. 이것이 소제의 목적이다. 소제에는 금지해야 할 것 두 가지가 있다. 소제에는 누룩을 넣는 것을 금한다. 말씀을 부풀리지 말라는 뜻이다. 그리스도인들에겐 허풍 혹은 과도한 감정이나 왜곡을 금지한다. 꿀도 넣어선 안 된다. 꿀은 불이 닿으면 변하기 때문이다. 꿀은 달콤하지만 불 시험이 올 때 변해버리기 때문에 소제에선 금하신 것이다.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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