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제국의 품격

입력 2020-11-12 03:03 수정 2020-11-15 17:53

인류 역사 속에 수많은 제국들이 있었다. 제국의 역사는 정복전쟁으로 점철된 흥망성쇠의 격변으로 가득하다. ‘제국주의’란 단어가 주는 부정적 인식은 역사 속의 제국들이 행한 폭력과 연관이 있다. 성경 안에도 구약 시대의 이집트, 바벨론, 페르시아, 그리고 신약 시대의 로마까지 여러 제국들이 등장한다. 기독교 신앙은 제국들의 틈 속에 하나님의 뜻을 묻고 시대를 비평하는 통찰 가운데 형성돼 왔다. 지금까지도 하나님 나라와 세속제국은 역사의 궤를 함께하며 진행되고 있다.

성경에 눈에 띄는 한 제국이 있다. 이 제국은 강력한 힘으로 주변국을 정복하고 압제하는 모습이 아닌, 자신의 힘으로 주변 국가의 시대적 어려움을 보살피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바로 고대 이집트 왕국이다. 이집트? 적잖은 분이 이 나라를 ‘출애굽기 서사 속의 사악한 제국의 대명사가 아닌가’ 하며 의아해 할 것이다. 하지만 역사 속에 아주 잠깐이었지만 이집트가 모범적 제국의 모습을 보여준 적이 있다. 이는 당시 이집트 제국 총리의 탁월한 지도력에서 기인했다. 그의 이름은 요셉이다.

요셉의 삶은 성경에 상세히 기록돼 있다. 유년기에 어머니를 잃고 형제의 미움을 사 이집트에 종으로 팔려왔다. 종살이 중 누명을 쓰고 죄수 신세가 되지만 하나님의 지혜로 바로의 꿈을 해몽해 총리가 되는 인생역전을 이룬다. 요셉의 성공은 그저 꿈을 잘 해몽하는 신통력 때문이었을까. 그가 바로의 꿈을 해몽한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자. “이제 바로께서는 명철하고 지혜 있는 사람을 택하여 애굽 땅을 다스리게 하시고, 나라 안에 감독관을 두어 그 일곱 해 풍년에 애굽 땅의 오분의 일을 거두고 그 곡물을 바로의 손에 돌려 각 성읍에 저장하여 일곱 해 흉년에 대비하시면 땅이 이 흉년으로 말미암아 망하지 아니하리이다.”(창 41:33~36)

요셉의 말에는 미래의 일을 해석하는 것을 넘어 풍요를 관리하고 난관을 극복할 수 있는 구체적 방법이 등장한다. 해몽을 들은 바로는 다가올 경제적 격변을 관리할 총리로 요셉을 등용한다. 신분과 경력을 뛰어넘어 인재를 등용하는 바로의 혜안도 눈여겨볼 만한 부분이다. 총리가 된 요셉은 나라의 경제 정책을 수립하고 관리하기 위해 헌신한다. 그는 어느 곳에 있든지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해 상전에게 절대적 인정과 신뢰를 받았다. 자신의 권한을 사적으로 악용하지도 상전의 자리를 탐하지도 않았다.

7년 동안 얼마나 살림을 잘했던지, 이집트는 어려움 없이 최악의 불황을 극복한다. 나아가 남는 양식으로 주변국 난민을 수용하고 양식을 무상 공급하며 세계의 총체적 어려움을 책임지려는 모습을 보인다. 먹고살기 위해 찾아온 사람을 내쫓지 않았고, 이들을 막고자 장벽을 세우지도 않았다. 이들을 정복해 노예로 삼지도 않았다. 이런 면에서 요셉은 최선의 역량을 다해 사람을 살리는 시대적 소명을 완수한, 역사상 가장 품격있는 제국의 총리였다.

오늘날 미국의 힘은 전 세계를 통제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하다. 하지만 그동안 미국에 대한 세계인의 평가는 가진 힘에 비해 너무나 초라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구호로 그 힘의 위세를 강조했다면,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은 “미국을 다시 존중받는” 나라가 되게 하겠다고 공약했다. 바이든의 지도력은 아직 미지수이지만, 요셉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민자 출신의 젊은 인재를 등용해 위기를 극복한 현명한 바로의 모습을 보이길 기대해본다. 그렇게 미국이 다시 정의되고, 지금 전 세계가 마주한 어려움을 함께 극복하는 품격있는 지도력을 보여주길 바라본다.

윤영훈 (성결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