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 방가방가!” 일부러 목소리를 한 옥타브쯤 올려 편의점 문을 열었는데 계산대에 있는 하담이 표정이 역시 좋지 않다. 문자메시지를 받고 이미 짐작했다. “왜? 어느 정도길래 그래?” 하담이는 뾰로통 휴지통 있는 쪽을 가리킨다. 라면 국물로 어지럽고 분리수거도 전혀 되어 있지 않다. 앞 타임 근무자 준오가 해야 할 일인데 깜박했나 보다. “똑 부러지게 뭐라고 좀 해주세요. 항상 좋은 말로 토닥거리지만 마시고….” 알바에게 이런 충고나 듣다니, 흑흑, 사장 체면 말이 아니다.
준오는 손님에게 더할 나위 없이 친절하고 성격도 좋은데 뭘 자꾸 잊고 덤벙거린다. 청소를 잊는 것은 다반사고, 상품이 들어오면 검수부터 해야 하는데 그냥 진열하는 경우가 잦고, 계산에 서툴러 매출 확인할 때마다 들쑥날쑥하며, 소지품을 가게에 두고 가는 일도 흔하다. 근무복 조끼를 그대로 입고 퇴근해 학교에 갔던 적도 있다. 요새는 마스크를 가게에 놓고 갔다 한참 뒤 다시 돌아와 뒷머리를 긁적이며 찾아간다. 그럴 때마다 하담이는 눈에서 레이저 광선을 뿜어내며 준오를 째려본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야, 너네 그러다 사귀겠다”하며 하담이를 놀리는데, 하담이는 지금 농담할 기분 아니라는 표정으로 나까지 쏘아본다. 아, 하담이가 무섭다.
그렇다고 하담이도 완벽하진 않다. 자기 일은 깔끔하게 잘하는데, 놀랄 정도로 일은 잘하는데, 그래서일까, 앞뒤 근무자와 불화가 잦다. 사실 편의점은 다른 직원과 부딪힐 일 자체가 별로 없는데 하담이는 아니다. 누군가 자기 할 일에 소홀하면 잊지 않고 기록해두고, 꼭 문제를 제기한다. 그래서 하담이에게 “앞으로 지적할 일 있으면 직접 말하지 말고 나를 통하라” 당부해뒀을 정도다. 게다가 손님에게도 그렇다. 단골손님에게는 천하제일 서비스 정신을 발휘하지만 매너없는 손님에게는 무뚝뚝 원칙적으로 대한다. 그런 하담이가 영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래도 지나치게 냉정하달까.
신은 인간에게 모든 것을 건네주지 않는다. 손님에게 친절하면 진열에 건성이고, 꼼꼼하고 단호한 친구는 대인관계에 지나친 측면이 있고, 밝고 차분하고 다 좋았는데 건강이 나빠 그만둔 친구가 있는가 하면, 이런저런 문제에도 특유의 붙임성으로 수년간 함께하는 친구도 있다. 근무시간에 우연히 계산대 안에서 이야기를 나눴는데, 나이는 어리지만 산전수전 다 겪어 나를 왈칵 눈물 쏟게 만들었던 녀석도 있다. 숱한 알바를 겪으며, 누구든 생각과 사연이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배우게 됐다. 한두 번 실수했다고 매정하게 내보낸 것이 수년 지난 지금까지 가슴에 걸리는 친구도 있다.
알바가 스승이다. 사람이 교과서다. 다양한 문제를 풀어봐야 시험을 잘 치르는 것처럼, 사람도 겪고 복작여야 생각의 두께가 쌓이는 걸까. 우리는 매일 그런 시험을 치르는 건지 모른다. 기말고사인지 쪽지시험인지 알 수 없으나 매번 나름의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내일은 준오를 만나야겠다. 준오가 하담이 앞에 유독 고분고분한 것이 어째 수상 야릇하기도 하다.
봉달호 (작가·편의점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