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국회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대책 마련을 강조하고 경제부총리 및 주무장관, 여당 대표와 원내대표가 연일 언급하는 것을 보니 상황이 심각하긴 한 모양이다. 그야말로 “미쳤다”는 말이 그대로 들어맞는 몇 달간의 전세 대란은 대통령도, 집권여당 대표도, 주무부처 장관도 피해갈 수 없는 사안이 돼버렸다. 집주인도, 세입자도, 정치인도, 공무원도, 누구도 ‘해피’하지 않은 이 얘기는 엄연한 현실이다. 이 모든 게 불과 몇 달 전 더불어민주당이 거대 의석수를 앞세워 밀어붙인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 처리 이후 일어난 일이다.
100일 전인 7월 3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임대차법이 어떻게 일사천리로 처리됐는지 복기해보자. ‘전세 계약기간 4년 연장, 갱신 시 보증금 인상률 5% 제한’ 등을 담은 이 법은 민주당이 이를 법사위에 올리기 전까지 야당 의원, 국회 전문위원들도 알지 못했다. 상임위 소위의 법안심사 및 보고, 축조심의, 찬반토론도 없었다. 최소한의 시뮬레이션을 통한 전월세 시장 영향 검증, 시범지역 우선 적용 등의 주장이 야당에서 제기됐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민주당이 법 개정 한 달 전인 6월 말 주최한 세미나에서 임대차법 도입이 전세 급등, 임대주택 공급 위축, 의무 계약기간 장기·고정화 등 부작용을 발생시킬 것이라는 점이 거론됐지만 민주당은 보완책 없이 이를 밀어붙였다. 법안은 7월 29일 법사위에 상정돼 바로 통과됐고, 다음 날 본회의에서 재석 187인 중 찬성 186인으로 통과됐다. 정부는 그 다음 날 임시국무회를 열어 이를 공포했다. 법안은 곧바로 시행됐다.
하지만 결과는 어떤가. 부동산 업체 조사 결과 세입자 보호 취지로 만들었던 임대차법에 대해 전세 세입자의 68%는 “오히려 도움이 안 된다”고 답했다. 믿기 어렵다고? 여당의 한 의원이 여론조사 업체에 의뢰해 조사한 결과를 봐도 응답자의 66%가 전세난이 심각하다고 답했다.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계속 그랬던 것처럼 시장의 수요·공급 논리에 맡겨야 될 부분을 정책으로 해결하겠다며 욕심을 부렸고, 경고음도 무시하고 힘으로 밀어붙인 결과다.
그런데 이를 보완할 대책이 없다. 정부와 여당이 해법을 내놓을 생각도 별로 없어 보인다. 책임 있는 당국자들의 면피는 가관이다. “불편해도 기다려 달라”(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 “일시적 영향은 감내하고 참아 달라”(이호승 청와대 경제수석) “확실한 대책이 있으면 정부가 발표했을 것”(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전세난이 임대차법 때문이라고 말하긴 어렵다”(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등등. 특히 주무장관의 계속되는 무책임한 동문서답은 소름이 돋을 정도다.
문재인 대통령은 얼마 전 임대차보호 3법 조기 안착과 질 좋은 중형 공공임대아파트 공급을 전세 대란의 해법으로 언급했다. 시장의 반응은 어땠는지 모두 알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은 한술 더 떠 ‘전세 3+3년’ 개정안을 발의했다. 왜 전세 대란이 발생했는지, 그 부작용도 고려하지 않은 희한한 법안이다.
전세 대란뿐만이 아니다. 집권여당이 성폭력으로 공석이 된 시장 공천을 위해 당헌을 ‘당원 뜻’에 맡겨 하루아침에 뒤집고, 여성가족부 장관이라는 사람은 이런 사태를 ‘성인지 감수성 집단학습 기회’라고 했다. 자신이 임명한 고위 공무원 두 사람이 몇 달째 싸우고 여야는 또 이를 부추기고 나라가 매일같이 떠들썩한데 대통령은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다.
21대 총선에서 180석을 얻은 거대 여당은 ‘책임 정치’를 거듭 강조했다. 그런데 쥐고 있는 권력이 크면 책임도 막중하다. 무언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면 바꿔야 하고, 그게 안 되면 책임이라도 져야 한다. 국민은 책임지지 않는 권력에 등을 돌릴 수밖에 없다.
남혁상 정치부장 hs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