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 소식에 중국에서는 9년 전 부통령 시절 바이든이 방문한 베이징 식당이 화제다. 중국 네티즌들은 허름한 식당에서 등받이도 없는 의자에 앉아 손녀와 함께 짜장면을 먹던 미국 2인자 사진을 공유하며 ‘오랜 친구’라고 친근함을 드러냈다. 천안문에서 북쪽으로 약 5㎞ 떨어진 이 식당 앞은 지금 각국 취재진과 손님들로 북적이고 있다.
바이든에 대한 중국 사람들의 평가는 대체로 우호적이다. 4번의 중국 방문, 시진핑 국가주석과의 교분, 역경을 딛고 일어선 개인사 등이 두루 작용한 결과다. 바이든이 대선 승리 후 첫 휴일인 지난 8일(현지시간) 첫 번째 부인과 딸, 아들이 잠들어 있는 델라웨어주 성 요셉 성당 묘지를 방문했다는 뉴스는 중국 포털 바이두에서 종일 검색어 상위에 올랐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외교 베테랑이 몰고 올 미·중 관계 파장 때문이다. 중국 입장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독불장군이었다면 바이든은 우방과 손잡고 연합 전선을 펼 원칙주의자다. 트럼프와는 가능했던 물밑 협상이 바이든에게는 안 통할 여지가 크다. 연방 상원의원(6선)을 지낸 바이든은 12년 동안 외교위원회에서 활동했고 법사위원장도 맡은 바 있다. 외교력과 협상력에 있어서만큼은 가장 준비된 대통령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국제 문제를 다루는 한 블로그에는 미 대선 직전 바이든을 ‘늙은 여우’에 빗대어 경계하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바이든은 동맹과의 관계를 중시하고, 동맹은 미국이 세계 질서를 주도하는 근간이기 때문에 중국으로선 달갑지 않은 상황이 펼쳐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바이든 등장으로 중국은 다리 뻗고 잘 수 없게 됐다”고 했다. 최근 사석에서 만난 중국 대학의 한 교수도 “중국 정부가 바이든 등판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이 미 대선 과정의 혼란상을 지켜보며 속으로 웃고 있다고 보는 시각이 있지만 실제로는 대중 압박 강도와 방식이 트럼프 때보다 더할 것이란 위기감이 크다. 바이든이 트럼프 시대 추락한 미국의 위상을 바로 세우고 느슨해진 동맹과의 관계를 다잡기 시작하면 중국 입지는 그만큼 좁아질 수밖에 없다.
시진핑은 바이든 당선에 아직 축하 메시지를 내지 않았다. 중국 외교부는 지난 9일 정례 브리핑에서 관련 질문이 나오자 “바이든이 승리했다고 발표한 사실에 주목한다. 대선 결과는 미국의 법과 절차에 따라 확정될 것으로 이해한다”는 조심스러운 답변을 내놨다. 선거 불복을 예고한 트럼프에게 조금이라도 공격 빌미를 줄 만한 단어와 표현은 모두 뺐다. 외교부는 바이든에게 당선인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바이든 선생이라고 호칭했다. 4년 전, 선거 다음 날 당선이 확정된 트럼프에게 축하 전문을 보냈던 것과는 대비된다.
지금처럼 외부 정세가 급변할 때 중국이 취해온 태도는 세 가지다. 맞서 싸우거나, 타협하거나, 잠시 숨을 돌리고 내부 역량을 키우는 것이다. 이번에 중국은 마지막 카드를 택했다. 내수 강화와 기술 자립을 경제 발전 전략으로 정했고 2035년 달성할 장기 비전을 제시했다. 5년 단위로 경제 전략을 세우는 중국이 15년 장기 비전을 제시한 건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바이든의 대중 정책이 실체를 드러내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미국의 코로나19 상황이 급박하고 선거 과정에서 분열된 나라를 통합해야 할 과제가 눈앞에 있다. 대중 정책을 비롯한 아시아 전략은 내년 상반기는 돼야 구체화될 전망이다. 그때도 중국인들에게 바이든은 여전히 오랜 친구일까. 지금은 예단할 수 없다.
베이징=권지혜 특파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