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 음력 10월 3일이 개천절이었다. 구한말에 대종교 등 민족종교단체가 음력 10월 3일을 개천절로 삼았는데 해방 이후 한국 정부가 양력 10월 3일로 바꾸었다. 정부와 국민이 양력 10월 3일을 기념해도 민족종교단체는 여전히 음력 10월 3일을 개천절로 기념한다. 올해 음력 10월 3일은 양력으로 11월 17일이다.
20여 년 전 개천절에 민족종교단체가 인천 강화도 마니산 참성단에서 천제를 올린다 하여 취재를 한 적이 있다. 참성단 천제 제단에 어떤 음식이 오르는지 궁금했는데, 별것이 없었다. 과일과 떡, 부침개 등 민간의 제사 음식과 같았고 천제이다 보니 그 양은 많았다. 그때에 이런 생각을 문득 했다. ‘그 먼먼 옛날 단군이 신단수 아래에서 개국을 선언하면서 천제를 올렸을 수도 있다. 그때에 단군은 대체 어떤 음식을 올렸을까’ 하는. 그렇게 하여 내 인문학적 상상은 이렇게 전개됐다.
소와 돼지를 키울 때가 아직 아니었다. 산에서 멧돼지나 노루를 잡아 생으로 올렸거나 장작불에 그슬리어 올렸을 것이다. 무당이 하듯이 창끝에 이놈들을 꽂아서 세웠을 수도 있다. 산에서 거둔 도토리와 밤 같은 열매와 재배 곡물도 올렸을 것이다. 또 곡물로 조리한 음식도 있었을 것인데, 어떤 곡물 음식이 가능했을까.
4353년 전이면 청동기 시대다. 농경과 함께 정착 생활이 시작됐다. 조, 피, 수수, 콩, 쌀 등의 곡물이 재배됐다. 그 시대 곡물 가공 도구 중에 흔한 것이 갈판과 갈돌이다. 바닥이 파인 평평한 돌이 갈판이고 그 바닥에 맞춰진 돌이 갈돌이다. 갈판에 곡식을 놓고 갈돌로 갈면 가루가 된다. 이 곡물 가루로 해먹었을 음식은?
단군의 ‘국민’은 움집 생활을 했다. 움집 한가운데에는 불을 피우는 화덕이 있었다. 난방 겸 취사용이었다. 이 화덕 곁에는 토기가 있었다. 유약 없이 구운 것인데 곡물을 넣고 끓일 수 있는 정도의 단단함은 있었다. 여기에 곡물 가루를 넣고 끓여 먹었을 것이다. 죽이다. 떡을 조리할 수 있는 시루는 그 시대에 아직 없었고, 밥을 지을 수 있는 무쇠솥은 꿈도 꾸지 못할 때이다. 단군 시대의 주식은 죽이라는 게 내 인문학적 상상의 결론이다.
음력 10월 3일이면 농사가 끝나는 시기이다. 추석은 추수감사절의 의미가 있다 하지만 이는 근대에 조작된 것이다. 음력 10월 3일이 한반도 사람들의 본디 추수감사절일 수 있다. 개천절 천제는 “올 한 해 농사 잘 지었습니다” 하고 환인과 환웅에게 알리는 일이다. 개천절을 단군이 나라를 세운 날로 읽을 것이 아니라 한반도 초기 정착 농경민의 추수감사절로 해석하는 것이 올바를 수 있다.
마니산 참성단에서 천제를 끝내고 떡과 과일을 나누어 먹었다. 나는 제단에 어떤 죽을 올리면 좋을지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마침 천제를 진행했던 인사가 내 곁에 있었다. 나는 그에게 내 고민을 나누었다. 천제에 와서 얻어먹은 떡과 과일 값은 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단군 시대의 주식은 죽이니 천제에는 죽을 올리는 게 맞을 수 있어요.”
“죽이요?”
그는 입에 든 떡을 손에다 뱉고 말을 이었다.
“아니, 하늘님께 죽을 올리자고요?”
나는 이미 말을 뱉었고, 이를 멈출 수가 없었다.
“단군은 고대인이잖아요. 고대 음식이 필요해요. 서양에서는 오트밀 그러니까 귀리죽을 인류 최초의 곡물 음식이라고 해요. 우리 민족 최초의 음식은, 피죽이 어떨까요. 피는 자연에서도 잘 자라잖아요. 개천절에 단군에게 피죽을 올린다!”
“아니, 이 양반이! 상제님이 피죽도 못 드신 줄 알겠네!”
신화는 인간에게 경외심을 가지게 하는 용도로 쓰여야 함을 난들 왜 모르겠는가. 한편으로는, 신화는 깨라고 있는 것이다. 글을 끝내며 피죽 파는 식당이 없나 검색해보고 있다.
황교익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