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 능력은 1순위가 아니었다. 만에 하나 ‘흔들기’가 있더라도 신념을 지킬 분들로 추천했다.”
이찬희 대한변호사협회장은 초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 후보자를 추릴 때 수사 능력이나 정의감보다 정치적 중립성을 최우선으로 평가하는 데 내부적 공감이 있었다고 9일 밝혔다. 변협이 지난 3월 16일 전국 변호사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공수처장 후보자를 천거받을 때부터 정치적 색채가 분명한 이들의 이름은 많이 회신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5월 사법평가위원회 등을 거치면서도 정치권에서 자주 거론된 이들은 오히려 많은 지지를 얻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변협이 초대 공수처장의 자질로 정치적 중립성을 첫손에 꼽은 것은 공수처가 독립성 우려 속에서 출범한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현행 공수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은 “다른 수사기관이 고위 공직자 범죄 등을 인지한 경우 그 사실을 즉시 공수처에 통보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공수처 논의 초기에는 없던 이 조항이 법안에 포함됐을 때 검찰에서는 “놀랍다”는 반응이 나왔었다. 사실상 검·경 수사 사안을 검열하는 것이며, 청와대·여권과의 수사기밀 공유로 이어져 수사의 중립성을 훼손할 ‘독소조항’이란 반응이었다.
그간 공수처를 향한 검찰의 공식적 반응은 개혁 논의와 함께 조금씩 달라져 왔다. 검찰은 박근혜정부 시절에는 공수처를 ‘족보도 알 수 없는 남의 집 아이’라 불렀다. 수십년 키워온 검찰이란 ‘적자’가 있는데 새로운 사정기구를 호적에 올리느냐는 원색적인 비유였다. 이후 문무일 전 검찰총장은 “국민의 염원을 알고 있다” “효율적 부패 척결 방안에 지혜를 모으겠다”고 했고, 윤석열 검찰총장은 “부정부패 대응 능력의 총량이 약화되지 않는다면 다른 기관이 특별수사를 담당해도 무방하다”고 했다.
지난해 말 국회 ‘4+1 협의체’가 공수처 설치안을 합의할 때 절차적 문제를 거론하며 반발했던 검찰은 이젠 더 이상 독소조항 지적을 하지 않는다. 이 회장도 “이미 법이 통과돼 출범했기 때문에 공수처가 잘 운영되도록 힘을 실어줘야 할 때”라고 했다. 고위 공직자의 직무 관련 부정부패를 엄정하게 수사할 기구가 필요하다는 공감대는 이미 국민적으로 형성돼 있다. 홍콩 염정공서, 싱가포르 탐오조사국이 국가적 반부패 풍토 조성에 일정 성과를 거뒀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다만 최근 검찰 안팎에서는 공수처 원리나 기능이 아닌 사회적 분위기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검찰 수사를 겨냥한 정치권의 공격이 극심해졌고, 수사 대상자들의 주장에 따라 검사들이 교체되거나 감찰을 받게 되는 사례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유행이 돼 버린 남(濫)고소·고발 경향도 공수처의 중립성을 위협할 대상으로 지목된다. 법조계 고위 관계자는 “윤 총장에 대한 흔들기를 감안하면 공수처장 또한 이를 버틸 만한 인물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는 인도네시아의 독립적 부패방지 기구인 부패근절위원회의 ‘도마뱀 대 악어’ 사건이 재연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공수처와 기존 수사기관 간의 권한 다툼이 큰 사회적 갈등이 될 것이라는 얘기다. 인도네시아 부패근절위원회와 경찰은 2009년 서로를 경쟁적으로 별건 수사했는데 대통령이 나서서도 갈등이 가라앉지 못했다. 조직이 미약했던 부패근절위원회가 도마뱀에, 경찰은 악어에 비유됐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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